숲속의 로맨스
앤 래드클리프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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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배신, 계략과 응징이 난무하는 격정 고딕 로맨스]

 

'고딕소설' 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뾰족한 탑과 기괴한 분위기 때문에 유령같은 초현실적 이야기를 기대했던 [숲속의 로맨스]. 앞서 읽은 [공포, 집, 여성] 덕분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오히려 '이번엔 어떤 공포를 마주하려나!'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예상외로 무서움은 조금, 로맨틱함과 분노와 그 분노를 해소해주는 결말로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앤 래드클리프가 어째서 '로맨스 작가들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지 완벽히 이해가 되는 작품이라고 할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갈등과 긴장, 악인에 대한 처단과 선인에 대한 보상으로 독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채권자들과 법의 심판을 피해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피에르 드 라 모트와 그 일가. 도주 중 괴한들의 손에 잡혀 있던 아름다운 아들린을 우연히 만나 함께 하게 된다. 언제까지 도망다닐 수도 없는 노릇. 버려진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는 일행은 서로를 의지 삼아 조용한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수도원에 감도는 음산한 분위기와 누군가가 감금된 후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두려움에 떨고, 그 와중에 아들린을 향해 사악한 뱀의 마음을 가진 자가 검은 손길을 뻗치기 시작한다!!

 

앤 래드클리프는 이야기 진행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를 들었다놓았다 한다. 어느 때는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치게 만들다가도 '그렇지! 이거지!' 하면서 통쾌함을 맛보게 해주는데, 흡사 요즘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의 진행방식을 따라가는 듯 하기도 하다. 하지만 앤 래드클리프가 먼저이므로, 혹시 드라마 작가들도 이런 고전 작품들을 참고로 해서 대본을 작성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 '막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악인으로 등장하는 후작이 그 어떤 납득도 되지 못할 정도로 안하무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들린을 향한 욕망을 가진 추잡한 남자인 줄만 알았는데 뒤에 밝혀지는 악행이 폭로될수록 입이 떡 벌어지게 된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그 누구보다 섬세하게 보여주는 라 모트 백작 때문이었다. 후작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아들린을 후작의 손에 바치려 하지만, 인간적인 양심까지는 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런 그에 비하면 시종일관 고결한 품성에 아름답게 그려지는 아들린이나 악행만을 일삼으며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후작은 너무나 단편적이라 오히려 사람이 아닌 인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고 할까.

 

대부분의 고딕소설들이 잔인하고 기괴한 것에 비해 [숲속의 로맨스]는 비록 수도원이나 비밀통로, 숨겨진 방이라는 설정은 있지만 무서움보다 로맨틱함을 더 강조하는 작품이다. 평소 '고딕소설'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쉽게 접하지 못한 독자라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사랑과 배신, 격정과 로맨스와 계략이 난무하는 매력적인 앤 래드클리프의 고딕작품. 이 기회로 그녀의 작품이 더 많이 출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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