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이었을 때
앰버 가자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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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무겁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쓰라렸다. 첫째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이가 벌써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 지금은 하루에 수십 번씩 엄마를 부르면서 나에게 매달려도, 학교를 가고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 아마 아이가 나를 찾는 횟수는 줄어들 것이다. 제발 엄마 좀 그만 부르라고, 엄마도 생각 좀 하게 10분만 혼자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지금을 나는 아주 그리워하게 되겠지. 자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으면서 -오늘도 엄마가 미안해,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하자, 조금만 천천히 커-라고 되뇌이는 지금이 행복의 정점이라는 것을 가슴 시리도록 잘 알고 있다.

 

아론이 갓 태어났을 때 거의 2년은 따뜻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에는 짜증 나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기억이 따뜻하고 아련하다니 참 알 수 없는 일이었다.

p23

 

그래서 켈리의 심정에 백번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문장 사이사이에 드러나는 아이를 잃은 엄마의 흔적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켈리가 바로 나였다.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 역시 켈리처럼, 혹은 켈리보다 더 못한 시간 속을 살아갈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남편은 일 때문에 주말에만 만날 수 있고, 가족이 없는 집은 무덤처럼 공허하며, 켈리를 안아주고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켈리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켈리. 어린 나이에 아들 아론을 낳았던 젊은 날의 켈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또 다른 켈리와 그녀의 아들 설리번에게 연민과 동시에 동정심을 느끼는 켈리는 그녀를 볼 때마다 떠나간 아들 아론을 더욱 그리워하고, 아기 돌보는 데 익숙지 않은 다른 켈리를 대신해서 설리번을 키우고 싶다는 그릇된 욕망까지 가지게 된다. 하지만 켈리의 주변 인물들은 과거 그녀의 과오로 인해 또 다른 켈리와 설리번이 상상 속 인물은 아닌가 의심하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는 켈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망상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아들을 잃은 켈리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그녀의 삶에 등장한 또다른 켈리. 당신이라면 누구를 믿을 것인가. 젊은 켈리는 과연 아론을 잃은 켈리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망상의 결과물일까. 정말로 켈리는 자신이 설리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독자인 당신이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그 어느 쪽을 믿더라도 작가가 준비해놓은 반전이라는 덫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믿은 것은 아들을 잃은 켈리였다. 설령 또 다른 켈리와 설리번이 그녀가 만들어낸 상상 속 인물이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엄마로서 그녀에게 동정과 아픔과 연민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전부 느꼈다. 때문에 그녀의 마지막 선택 또한 지지한다. 그녀는, 나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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