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의 것들 이판사판
고이케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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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렇게 이름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고 저렇게 이름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판사판 시리즈'라는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지'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북스피어의 <이판사판 시리즈>. 독자에게는 '시리즈'라는 단어는 마약과도 같아서 한 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일단 한 권 읽었으니 다음 작품도 계속 읽게 되는 마성의 매력을 뿜어내는 것이다. <이판사판 시리즈>의 독특한 점은 매번 다른 작가의, 다른 장르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에 출간된 고이케 마리코의 [이형의 것들] 로 어느새 네 번째 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포 김사장에서 이제는 삼송 김사장님이 되신 대표님이 딱 10권만 만들고 끝장을 보시겠다는데, 10권 말고 100권은 만들어달라고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시리즈에 정말로 홀딱 빠져 있다. 

 

과연 '호러 소설의 명수'라 불리는 고이케 마리코답게 [이형의 것들]에 실린 여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으스스한 뒤틀림을 선사한다. 첫 단편인 <얼굴> 부터 작품의 분위기가 선사하는 기괴함에 압도되어 편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도 없는 농가, 멀리서 다가오는 한 여인,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그 여인의 얼굴! 출구 없는 공간에 갇혀 어디로 가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가슴을 짓눌러온다. 아니, 처음부터 이렇게 압박해온다면 다른 작품은 어떻게 읽나 싶어 바로 다음 단편으로 직행하지 못했을 정도. 

 

다음 이야기는 어떤 공포를 선사해줄까 싶어 마음을 가다듬고 만난 두 번째 단편 <숲속의 집>. 보통 산장이라고 하면 귀신 이야기를 나누기에 딱 좋은 장소 아니던가! 고전적인 공포를 만날 수 있으려나 짐작했는데 어라??!!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기는 하나 예상했던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호러 소설에서도 이런 정서를 만날 수 있구나-라며 감동했을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아련함에 코가 시큰해진다. <숲속의 집>에서 맛보았던 아련함은 <히카게 치과 의원>으로 이어진다. 

 

물론 산장을 배경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달하는 작품도 있다. 그 이름도 오싹한 <산장기담>.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데, 차라리 결말을 닫아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그 뒤는 전혀 상상하고 싶지 않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읽는다면, 어쩌면 거울에 자신의 등 뒤를 비춰보고 싶어지는 이야기라고 할까!! 그런 점에서 이국의 망령을 다루는 <조피의 장갑>과 결이 닿아 있는 듯도 하다. 

 

유령을 다루는 책이나 영화를 볼 때 벌벌 떨기도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생물 이외의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계의 존재가 있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나와 작가님이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듯한 문장을 맞닥뜨리고 감격!!

 

그렇게 나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음매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이음매에는 언제나 그 여자가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많은 일들을 떠올려 봐도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고 아무런 설명도 들은 적 없지만 지금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해지곤 한다. 동시에 한없이 그립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p233

 

짧지만 인상깊은 이야기들로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보여준 고이케 마리코. 이 작품 전에 출간된 책들은 거의 품절이거나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이번 기회에 개정판이 나온다면 더없이 반가울 것 같다. 그녀가 그리는 세계를 좀 더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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