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다루는 철학서가 아니라 소설의 대표작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크리스티앙 보뱅의 [가벼운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 아니라에 오로지 나의 기준에 맞춰 나의 삶을 직조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뤼시'일 것이다. 자신만의 소중한 빛을 따라가는 사람. 타인의 강요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

 

어린 시절 서커스단에 있던 늑대 우리에서 잠든 사건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천성을 그대로 내보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느 누가 감히 흉내라도 낼 수 있었을까. 뤼시에게 있어 늑대는 그저 단순한 '동물'로서의 늑대가 아니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존재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 너도 이렇게, 늑대처럼 철창에 갇힌 신세가 될 지도 몰라, 그러니 조심하렴. 항상 주위를 살피고 너의 마음을 침범하려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이빨을 드러내야 한다는 걸 기억해.

 

홍보글에서 소녀와 사랑에 빠진 늑대 이야기라는 문구를 얼핏 본 것도 같다. 착각이었을까. [작은 파티 드레스]로 새벽의 감성을 깨워준 이가 단순한 판타지 소설을 쓸 리가 없지. 어딘가 익숙지 않고 어려워 보이는 문장들 안에서 이상하게 가슴을 울리는 글귀를 보고 눈물을 참지 못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보뱅이 설정한 '늑대'라는 존재에 대해 곱씹어가면서 읽는 [가벼운 마음]은 말 그대로 가벼운 소설이었다. 질적으로 낮다거나 내용이 가볍다는 것은 결코 아니고, 뤼시의 언행을 보고 있자면 인생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타인과 똑같은 단계를 밟아나가는 삶이 아니라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자신과 같지 않다고 해서 어느 누가 감히 타인의 삶에 충고를 할 것인가.

 

그녀의 마음은 티타티티타티다, 그녀의 발걸음은 타다다닥타닥타탁. 사랑은 사소한 것에도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피부와 블라우스 사이로 스미는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고, 전나무의 초록빛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물들일 줄 아는 사람에게 기존의 가치관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뤼시를 있게 한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엄마. 딸에게 사근사근해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고, 마음 가는대로 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

 

가끔은 일단 저질러야 한다. 이해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일을 왜 했는지 깨닫게 된다.

p181

 

[가벼운 마음]은 [작은 파티 드레스]처럼 역시나 소설이나 에세이 같지 않고 시처럼 다가온다. 통통 튀는 물방울처럼,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결국에는 연결되어 하나의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가 써내려간 문장 속에서 그의 삶이 엿보인다.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유랑하는 사람.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문장들 속에서 그가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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