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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집, 여성 - 여성 고딕 작가 작품선
엘리자베스 개스켈 외 지음, 장용준 옮김 / 고딕서가 / 2021년 12월
평점 :
[여성 고딕 작가들이 선보이는 매력만점 고딕소설들]
'고딕소설' 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기이한 느낌이 좋다. 무서우면서도 마냥 공포스럽지만은 않고, 소설 자체가 어딘가 다른 세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딕소설은 그 다른 세상의 또 다른 세상 같다고 할까.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손만 살짝 닿아도 미끄러지듯 끌려들어 갈 것 같은 그 기분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래서 더 관심가지고 있던 <고딕서가>의 고딕작품들. 이번에 너무 기쁘게도 <고딕서가>의 3종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 제일 처음 읽기로 결정한 것은 [공포, 집, 여성]. 다소 공포스러운 느낌의, 여성과 집을 소재로 한 네 편의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네 편의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회색 여인>이 아닐까. 타 출판사 두 어 곳에서 출간된 책 중에도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내가 가진 세계문학 중에도 이 작품이 실린 책이 있지만 읽는 것은 처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이길래 여기저기 보이는가 싶어 마음 딱 잡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새벽이었다. 물론 '고딕소설은 이런 새벽에 읽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새벽을 노리긴 했지만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소녀였던 아나. 그런 그녀가 어쩌다 생기를 잃고 '회색 여인'이라 불리게 된 것일까. 떠밀리듯, 간절하지 않았던 결혼을 하고 아버지와 오빠와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 아나. 남편 무슈 드 라 투렐은 아름답고 여성적인 남자지만 어째서인지 그녀가 가족들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다른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꺼리는 듯 하다. 그의 안색이 창백하다는 묘사를 보고, 나는 틀림없이 그가 흡혈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드러난 그의 정체는 더 잔혹한 것이었으니! 그녀가 딸의 결혼을 말리기 위해 쓴 편지 안에는 대체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었는가!
버넌 리의 <오키 오브 오키허스트, 팬텀 러버>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팬텀이라니! 특히 이 작가가 유령 출몰이나 홀림 등 초자연적 소설과 미학에 관한 글을 썼다는 소개글에 더 궁금했던 작품이다. 읽는 내내 등장하는 오키 부인의 이미지가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를 떠올리게 했는데, 몽환적이고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듯한 분위기가 압권이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비밀의 열쇠>는 <작은 아씨들>에서 받았던 느낌 때문인지 미스터리는 있었지만 처음 시작부터 어쩐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기분이 들어 제일 마음 편하게(?) 읽었다.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장점(?)!!.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의 작품인 <변신>은 제목도 그렇고, 역시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 덕분에 친숙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문득 고딕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생각에 검색해봤더니,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럽 낭만주의 소설의 일종이라고 한다. '고딕'하면 떠오르게 되는 건축물이 주는 폐허같은 분위기에서 상상력을 이끌어냈다고 하는데 내가 상상하고 있던 내용과 얼추 비슷해서 괜히 뿌듯했다.
보통 고딕작품의 작가는 남성으로, 여성은 고작 작품 안에서 공포에 희생되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공포, 집, 여성] 속 여성들은 죽음을 맞이할지언정 단순한 희생양의 모습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보다 당당하고 두려움에 맞서고, 사랑을 갈구하는 주체적인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여성 고딕 작가 작품선'이라는 명칭에도 걸맞는 듯 하다. 네 여성들의 개성있고 독특한 고딕 소설. 여성들이 집필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은 작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