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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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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라고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말했다.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를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문장이다. 불행한 가정의 불행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걸까, 그 불행을 안지 않으려면 부모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부모가 아무리 노력해도 불행한 가정이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고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리로 읽어내려갔던 [미궁]. 이 작품은 여타 미스터리 작품과는 달리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한다. 마치 미스터리 작품의 철학서 같다고 할까.
신견(新見)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우연히 사나에라는 여성을 만나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사나에에게는 원래 만나던 남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그가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여자. 그리고 신견에게 그 사라진 남자를 사나에가 죽인 것은 아닌지 확인해달라는 탐정이 접근한다. 탐정에게 듣게 되는 사나에의 과거. 22년 전 일가족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엄마, 그런 엄마를 감시하는 아빠, 동생을 사춘기의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오빠와 피해다니는 딸. 벽장에서 수면제가 든 주스를 마시고 잠들었던 사나에를 제외하고 모두 살해당했다. 충격적인 것은 312개의 종이학에 묻혀 있었던 엄마의 사체. 과연 22년 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사나에는 왜, 무엇을, 여전히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일까.
읽다보면 이 작품이 다른 미스터리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일단 주인공부터 남다르다. 그는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을 가진 자신의 마음에 'R'이라는 이름을 붙여 어딘가에 그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자신은 멀쩡해 보이지만 그 대척점에 R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신견은 혹시 사나에 가족을 죽인 것이 자신인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차라리' 자신이 범인이기를 바라는 일그러진 마음까지 품게 된다. 신견 외에도 다른 사람들을 유혹하는 미궁에 빠진 사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신견과 사나에 뿐만 아니다. 신견이 추리한 진상조차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냥 이 작품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나 뿐인 걸까.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동일본대지진을 언급하는데, 마치 그 사건 이후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가 바로 이 [미궁]인 것이라고. 삶이 한 순간에 끝날 수 있는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쩌면 하룻밤 사이에 가족을 모두 잃은 사나에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신견은 그런 사나에를 품을 수 있는 단 한명의 인간이다. 이름을 보라. 그는 사나에를 세상 사람들이 보는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오직 그만의 시선으로, 설령 사나에가 일가족을 죽인 범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겸허히(?) 받아들인다.
새로운 시선, 다시 시작될 새로운 삶.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어찌보면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한 작품이었다.
**출판사 <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