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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의 여름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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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단 하루도 떨어져서 자 본 적이 없다. 고단하고 혼자 있고 싶을 때면 혼자만의 밤이 그립기도 했지만, 아이들 없이 혼자 잠든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매우 쓸쓸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 복직을 앞에 두고 친정 부모님이 첫째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려가 돌보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도 펄쩍 뛰었더랬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는 내가 돌본다!는 마음이 강했고, 무엇보다 아이 얼굴을 보지 않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 한 구석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기분인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미래 학교'라는 곳에 맡기고 떨어져 생활했던 부모들은, 대체 무엇을 믿었던 것일까.
30년 전 여름, 단지 몇 번 얼굴을 마주했다는 이유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계속 남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애초에 다른 것일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싶어. 아이들에게 마땅히 주어졌어야 할 그 상황이 미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보통의 아이라면 겁이 났을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샘을 찾아가 소중하게 여겨온 물감을 뿌리며 '엄마 아빠와 살고 싶어!'라고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마음이, 과연 온전할 수 있는 것인가.
어쨌든 아이는 맡겨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렇지 않은가. 부모님도 '미래 학교'의 이상에 빠져 아이를 이곳에 보내놓고, 다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부모님 대신 의지하고 믿을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준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이의 세상은 또 한 번 무너진다. 그리고 찾아온 예기치 않은 사고. 달리 갈 데도 없었던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원치 않은 곳에서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소녀들의 심리가 날카롭게 다가와 내 마음을 베는 것 같았다. 어디에도 가닿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 듬뿍 사랑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한편으로는 감내하며 살아가는 고통이 생생히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 학교' 로 일주일 합숙을 와야 했던 아이들의 반응, 그 모임에 참가했다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 하는 발버둥. 그 아이들을 '미래 학교'로 밀어넣은 부모들의 맹목적인 믿음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래도 어린 시절 허락한 마음 한 조각은 소중한 것이었나보다.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혼신을 다해 자신을 도와주려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고,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다독여주는 소중한 사람 곁에서 어른이 된 아이는 치유받는 듯 하다. 호박처럼 굳어진 시간의 틀이 이제는 깨지려는 것 같다.
애정하는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이라 해도 두께가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가독성이 좋다. 조금은 몽환적이고 대부분은 현실적인, 아이들의 울음이 들리는 것 같아 마음 아팠던 이야기. 여름의 끝자락에서 읽었더니 어쩐지 여름이 이제 정말 '안녕'을 고하는 것 같아 한층 더 마음이 아련해진다.
** <내 친구의 서재>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