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서 1년 살기 - 소설처럼 읽는 고대 그리스 생활사
필립 마티작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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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창시절 학업에 치여 잘 몰랐을 뿐,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 시대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고, 어떻게 다른 나라와 교류했고,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일구었는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다만, 지금과는 말과 글이 조금 달랐던 탓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 뿐.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 사람들조차 흥미를 갖게 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다. 어릴 적 신화로부터 시작해 경이로움과 존경을 품고 접했던 이야기에, 이제 실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성된 책이 바로 [고대 그리스에서 1년 살기 ; 필립 마티작 저]다. 

 

배경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이 끝나고 약 100년 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피아 제전 중 132회 올림피아 제전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해이자, 133회 올림피아 제전을 1년 앞둔 때. 이 133회 올림피아 제전을 중심으로,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시절을 공유한 8명의 그리스 사람-농부, 외교관, 건축가, 달리기 선수, 상인, 어린 신부, 노예(도망자), 리라 연주자-이 등장한다. 그들은 물론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삶은 완전히 허구적이지만은 않다. 다양한 고고학적 발견의 도움을 받아 묘사된 그들의 삶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국가의 정치적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올림피아 제전을 앞두고 어떤 건물 짓기를 고민했는지, 결혼은 어떻게 치러졌으며 노예에 대한 대우는 어떠했는지 등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개인으로 등장하지만 후에는 결국 누군가와는 연을 맺게 되는 사람들 속에서 정말 한 편의 소설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노예 소녀였다. 마케도니아 동쪽 스트루마 강변을 따라 펼쳐져 있던 트라키아의 어느 부족 우두머리의 어린 딸이었던 트라타. 그리스인들의 침략으로 아버지는 죽고, 어머니와도 떨어져 본래 이름도 잃어버린 채 아테네에서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그녀의 쇄골에서 목선에는 말 문신이 새겨져 있는데, 한때 긍지와 자부심의 상징이었던 그것은 이제 야만인을 나타내는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주인의 학대를 못이겨 탈출을 감행한 트라타. 과연 그녀가 다시 잡혀 못된 주인에게 돌아가게 될 것인가, 모험을 통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인가가 너무 궁금해 그녀의 이야기부터 골라 읽었을 정도다. 

 

관심이 갔던 또 한 명의 인물은 어린 신부. 넷째 딸로 태어나 지참금을 가지고 시집을 가야 했기에 부모님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다. 그녀의 이야기는 특히 당시의 결혼 풍습을 엿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 처음 생리를 경험한 소녀들이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치르는 의식을 비롯하여 결혼할 때 중요시되는 조건, 혼사가 신부의 의견이 아닌 전적으로 '퀴리오스', 즉 그녀의 합법적인 후견인인 아버지가 결정하게 된다는 것 등도 알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아테네에서 시민권 없이 장기 적으로 머무르는 외국인들은 '메토이코스'라 불리며 구별되었다는 것 등 한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상황도 알 수 있는 문장들도 많았다. 덧붙이자면 어린 신부 아피아는 농부인 이피타의 아들과 결혼하게 된다. 

 

외교관이 들려주는 당시의 정세와 주어진 임무, 달리기 선수가 우승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다가오는 유혹, 리라 연주자가 대회에 나갔다가 씁쓸한 패배를 맛보는 것, 건축가가 올림피아 제전 전에 훌륭한 건물을 짓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자신이 맡은 일을 멋지게 해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와 다양한 목소리들. 중간중간 삽입된 역사적 정보들은 그래서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사람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용어들이므로. 

 

우리의 이야기도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처럼 후세에게 전해지는 날이 올까. 미래의 아이들도 이렇게 글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 들여다보게 될 날을 상상하니, 어쩐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어느 때보다 사실처럼 여겨졌던 고대 그리스의 1년. 그리스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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