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는 사람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는 취향에 맞든 안맞든 '무조건' 읽는 책에 속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입니다. 신비한 분위기의 그림책을 읽는 느낌도 들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 판타지같은 분위기가 강해요. SF 같기도 했다가, 순문학 같기도 했다가, 어쩐지 작가에게 농락당하는 듯한 기분도 들고, 읽으면서 알쏭달쏭한 맛에 '에라, 모르겠다!'와 같은 말도 툭 내뱉게 되는 작품이랄까요. 왜 느닷없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야기를 하냐면, 고바야시 야스미의 [바다를 보는 사람]을 읽는데, 똭!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쥬.

 

저에게 있어 고바야시 야스미는 [앨리스 죽이기]라는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입니다. 사실 민망하게도 이 작품조차 읽어보지 않았어요. 전 고전 혹은 현대의 작품이라도 원작을 변형시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것이 설사 이름만 차용하는 것이라 해도, '앨리스' 하면 누구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저에게 '앨리스'는 오직 그 한 명 뿐인지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앨리스가 다른 앨리스라고 해도 영 께름칙하더라고요. 게다가 작가의 성향을 살펴보니 치밀한 논리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특징으로 한다고 나와 있어서, 잘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등한시(?)하던 작가라 하더라도 그가 2020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는데, 그래도 돌고돌아 이 [바다를 보는 사람]으로 뒤늦게나마 만나게 되었네요.

 

이 책은 총 일곱 편의 SF 소설이 담긴 단편집입니다. SF 를 으엄청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어서 냉큼 펼쳐들고 읽었는데, 세상에나 네상에나! 첫 이야기인 <시계 속의 렌즈>부터 느무 어려웠습니다;; '딱딱한 세공품은 무엇이고 '부드러운 세공품'은 무엇이며, '축축한 세공품'은 또 무엇이란 말이더냐!! 제 평생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일본소설을 읽어보기란 처음이었어요. 머릿속이 너덜너덜해진 채 두 번째 이야기인 <독재자의 규칙> 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오, 이 작품은 감동도 있고 마음이 아프기도 한 것이 드디어 제대로 된 독서궤도에 오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어쩐 일인지 독서 후 저는 지친 마음으로 <역자 후기>를 정독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역자님 또한 '수포자로서 자기 몫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얼른 편집자에게 책을 돌려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해요. 무슨 이런 걸 소설로 쓰는 인간이 있나 싶으셨다네요! 이 작품을 SF 마니아들은 '하드 SF'라고 분류한답니다. SF의 정수이자 상당한 난이도를 갖춘 작품을 일컫는 것으로 마니아들은 이런 작품을 만나면 함수 계산기부터 찾아들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읽는다며! 뜨헉! 그러니 제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같은 수포자인 독자님이라면 가히 상상이 되실 거예요.

 

하지만 맨 앞에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 작품은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생각나게 한다고. '하드 SF' 마니아님들이 들으시면 화를 내실지 몰라도 저에게는 꼭 그랬는걸요. 그건 곧 '나는 수포자라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기는 하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매력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그린 세계가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하나의 작품들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존재하고, 작가님이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러브스토리다'라고 밝힌 것처럼 분명 어떤 사랑의 존재가 느껴집니다. 저는 특히 <독재자의 규칙>과 표제작인 <바다를 보는 사람>이 좋았어요.

 

시간은 모든 걸 밀어붙이지만, 시간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어. 시간의 흐름이 무서운 세계에서는 누구나 그걸 알지.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변하지.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해도 그건 공허한 일일 뿐. 변하지 않는 것에는 영원히 닿을 수 없어. 만약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언젠가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야. 왜냐면 그건 언젠가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중량감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살아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무언가를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본 기분이예요. 작품 속 인물들과 하나가 될 수는 없더라도 내가 있는 공간에서 다른 공간의 무엇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기이한 경험. 책을 읽는 동안, 저는 서재의 책상에 있었지만 제 마음과 정신은 분명 다른 곳에 다녀온 듯 합니다.

 

SF 장르를 사랑하시는 분들, 그 중에서도 특히 마니아에 수포자가 아니신 분들은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 분들의 리뷰는 어떨지 기대가 커요!

 

**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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