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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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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을 얼마 살아보지 않은 당신, 어느 날 중병에 걸렸는데 눈 앞에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악마가 나타나 하루에 한 개씩 무언가를 없앤다면 하루치의 생명을 연장해준다고 속삭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악마가 정해요. 무엇을 없애라고 할 지 궁금하고 두렵겠죠. 하지만 선택의 시간은 짧고, 악마가 지정한 그것을 없애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당신은 곧 세상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들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계속 없애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없앨 수 없는 존재가 있지는 않나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 앞에 나타난 악마가 다소 경망스러워 보였거든요. 야자수에 미국 자동차가 그려진 샛노란 알로하셔츠에 반바지,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선글라스. 적어도 생명을 두고 거래하는 자리에 나타날 법한 악마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악마와 주인공이 나누는 대화도 핑퐁핑퐁. 슬플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어디 한 번 볼까나?-라며 책을 든 채 드러누운 저. 얼마 후부터는 벌떡 일어나 앉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하루씩 생명을 연장해 나가기 위해 선택한 것들에 대한 단상이 무척 심도있게 다가오거든요.
악마가 없애라고 명령한 것은 전화와 영화와 시계. 불편할 것 같지만 어쨌든 생명이 걸린 일이니 결국 없애기를 선택한 주인공은 물건들과 관련해서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 또한 되새깁니다. 만나서는 별 말 못했지만 전화로는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었던 연인, 살면서 보았던 영화들과 순간순간이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였다는 깨달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멀어지고 말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왜 우리는 죽음을 앞에 두거나, 그 정도의 큰일을 맞닥뜨렸을 때가 되어서야 겸손해지고 삶의 의미를 찾아보게 되는 걸까요? 어쩌면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뒤로 하고, 지금이라도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감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주에 아버지가 문병 왔을 때, 시계가 멎었다고 했더니 말없이 들고 가버렸어. 고칠 생각이었구나."
"그렇지만 하필 이럴 때 고칠 건 없잖아."
"괜찮아. 물론 네가 여기 있어주는 것도 기쁘지만, 사람의 애정이란 게 꼭 그런 표현 방식만 있는 건 아닐 때도 있으니까."
p192
악마가 네 번째로 제시한 없애야 할 것은 바로 주인공의 고양이 양배추같은 고양이들. 앞의 세 가지는 망설이기는 했으나 없어지는 것에 동의했지만, 주인공은 고양이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나봐요. 양배추는 그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 어머니와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고, 자신의 삶을 이루어온 모든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거죠. 가볍게 죽음을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결국 이 이야기는 무거운 삶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입니다.
각 영화에 등장하는 명언들과 전화와 영화와 시계가 없어졌을 때 깨닫게 된 생각들까지, 처음 예상과는 달리 근사한 글들이 가득 담긴 책이에요. 더불어 당연하게 우리 생활을 채우고 있는 것들의 당연하지 않은 진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 양배추를 자전거에 싣고 눈물을 흘리며 페달을 밟는 마지막 모습까지 가슴에 스며드는 완벽한 이야기였어요!
**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