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라의 비밀 약방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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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그녀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하여]

이토록 많은 여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곳은 이 장부뿐일지도 몰라. 그들이 역사에 기억될 유일한 곳일 거야. 나는 엄마랑 약속을 했단다. 이런 것도 없다면 역사에서 지워져 버릴 여자들의 존재를 보호해 주겠다고 말이야. 이 세상은 우리 여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아. 여자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길 만한 곳은 몇 되지 않지. 하지만 이 장부는 그들의 이름과 추억, 가치를 지켜줄거야.

p166

책에 적힌 정설로서의 역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드러나지'않은 이야기들입니다. 단 한줄의 글로도 표현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벌어졌던 이야기. 뭔가 더 비밀스럽고 신비한 기분이 들어요.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역사라니, 어쩐지 반항(?)적인 열기와 열망이 전해져오는 것 같아 시작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는데요, 그런 기대감을 만족시켜주기라도 하듯 작품의 마지막까지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무척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넬라의 비밀 약방]은 18세기 영국 런던과 현재를 오가며 벌어지는 여성들의 이야기예요. 오직 여자들에게만 열리는 넬라의 약방. 사연 있는 여성의 편지를 받고 그들의 의뢰를 받아들여 복수를 도와주는 넬라와 주인마님의 심부름으로 약방을 찾게 된 소녀 엘리자, 10주년 결혼기념일에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어 홀로 런던으로 여행을 오게 된 캐롤라인의 시점에서 전개됩니다. 넬라의 비밀 약으로는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오빠, 동생을 죽일 수 있어요. 대상은 오직 남자로만 국한됩니다. 하지만 작은 실수가 약방에 파국을 불러오고 그 비밀 약방이 세상에 드러날 위기에 처하게 되죠. 먼 시간 속을 흘러 캐롤라인은 현재에서 넬라의 약방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고 그녀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면서 잊고 있던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 되돌아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한때 고고학자를 꿈꾸기만 했던 저에게, 캐롤라인이 비밀 약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전해져오는 열기와 흥분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골목, 굳게 닫혀있던 비밀의 문. 넬라와 엘리자에게 불행한 일이 닥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캐롤라인에게도 저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어요. 지금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혼자 여행을 오지 않았습니까? 여행을 와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포기한 게 많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죠.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는? 나는 정말 아기를 원하나? 우리의 결혼 생활은 괜찮았나? 그 와중에 넬라의 비밀 약방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조사하면서 홀로 즐거움을 느끼는 와중에 갑자기 남편이 연락도 없이 들이닥치는 거죠! 화해를 청하는 그에게 시간을 갖자고 요청하지만, 갑자기 이 남자가 아프기 시작해요. 그것도 심각하게. 이대로 아쉬운 결말로 향해가는가 싶었는데 18세기와 현재의 영국에서 모두 괜찮은 결말을 맞게 되어 만족스럽습니다.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 여성들. 그 여성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름과 추억, 가치를 지켜주겠다는 넬라의 의지는 결연해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이 세상을 만들어온 것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평범한 한명한명이라는 것을 넬라의 입을 통해 확인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비밀과 복수, 반전과 미스터리를 통해 여성,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해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한 사라 페너. 읽고 나니 저도 비밀을 찾으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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