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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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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계를 배경으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통쾌함을 전달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작가 이케이도 준. 이번에 출간된 [샤일록의 아이들]은 그런 작가가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을 결정지은 기념비적인 책'이라고 말할 정도로 의미가 큰 작품인 듯 보인다. 지금까지 읽어온 <한자와 나오키> 나 <변두리 로켓> 시리즈와는 달리, 총 열 개의 단편 속 등장하는 각각 다른 인물들로 비춰지는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을 통해 은행원의 비애와 고달픔을 쓰게 맛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보통은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읽으면 이번에는 어떤 통쾌함을 맛보게 해줄 것인가 하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두근두근했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우울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부하 직원들을 닦달하고 채근하다가 끝내는 폭력까지 휘두르는 관리직,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과연 은행원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취업할 당시만 해도 큰 은행에 취업했다고 하면 굉장히 똑똑하고 학업 면에서도 우수한 사람으로 여겨졌었다.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이 모두 소설 속 모습과 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충분히 벌어질 법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나라면 버틸 수 있었을까. 단편 <시소 게임>을 읽고 나니 '나라도'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와의 비교, 계약을 따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결국에는 스스로를 놓아버린 직원. 이야기의 반전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순간 멍해지면서 울음이 울컥 올라왔다. 이어지는 답답함 속에서 미스터리 하나가 피어오른다. 사라진 현금. 그리고 그 현금의 행방을 좇는 은행원과 그의 실종이 작품의 중반부터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나간다. 시치미를 떼고 동료들 사이에 숨어 그의 실종을 함구하는 누군가.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긴장감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작품은 결국 처연한 안타까움으로 막을 내린다.
금융계를 배경으로 이토록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작가가 과연 또 있을까 싶다. 비록 이번에는 기대했던 통쾌함 대신 씁쓸함과 안타까움만 가슴 가득 안게 되었으나 '역시 이케이도 준!'이라는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어디서나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이렇게나 안타까운 인생들이라니!!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가 '샤일록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 <인플루엔셜>을 통해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