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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토끼 ㅣ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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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주인공 하무라 아키라.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이 탐정은,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독한 일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늘 어딘가를 다치고 험한 꼴을 당하는 그녀지만, 그래도 매번 목숨은 건지며 끈질기게 생을 이어나가는 이미지라고 할까요. 작가가 그려내는 어조가 특히 담담하여 더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일 수도 있을텐데요, 이 불운의 탐정을 저는 무척 애정합니다.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는 무척 존경스러울만하고, 열악한 작업 환경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든 의뢰받은 일을 해내는 모습은 조용한 '여전사' 같아요.
[나쁜 토끼]는 하무라 아키라가 살인곰 서점에서 일하기 전, 프리랜서 탐정 시절을 다룬 작품입니다. <살인곰 서점 시리즈>의 하무라 아키라는 40대의 나이들고(?) 지친 모습으로 등장해요. [나쁜 토끼]에서는 그나마 30대라서인지 좀 더 활기차고 의욕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픈 상처가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해요. 하무라 아키라가 어째서 '어둠 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는지, 읽는 제가 다 숨이 막힐 정도였으니까요.
듣기로는 더 이상 출간된 <살인곰 서점 시리즈>가 없기도 해서 어쩌면 마지막 남은 하무라 아키라 사건 파일이라는 생각에 좀 더 아껴 읽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아껴 읽은 시간이 무색하게도, 한 번 잡고나니 집안일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몰입해버렸어요. 아이들 돌보면서 읽은 주말, 아마 여전히 휴직중이었다면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몰입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연속되는 소녀 실종 사건. 그 이면의 진실은 생각보다 더욱 추악하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로는 부족해요. 제가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읽는 이유는, 물론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라 재미있기도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 타인을 더 잘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들은 그냥 뭐 저기 우주 어딘가로 보내버리고 싶을만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인간들이었습니다. 쾌락과 돈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설이든 현실이든 존재하겠지만, 이건 용서의 'ㅇ', 아니 ㅇ을 그리고 싶어지지도 않게 하는 사건이었어요.
"인간, 힘들 때는 일단 먹어라"
p73
돌아가신 하무라 아키라 할머니의 좌우명. 이 문장을 보고 덤덤하지만 세상 일에 전혀 무감하지는 않은 하무라 아키라의 태도가 어쩌면 할머니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갖 풍파가 닥쳐도 굳건히 살아남을 것 같았던 그녀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밥을 하고 우직하게 씹어넘기며 살아가겠죠. 여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무라 아키라는 저의 최애 탐정 베스트 안에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작가님, 그러니 부디 이 시리즈 오래오래 이어가 주시기를!!
** <내친구의서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