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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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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을만한 눈에 띄는 재능은 없었지만, 엄마인 자신은 료가라는 사람의 좋은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점을, 그 애가 어릴 적 더 많이 칭찬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아는 깔끔함을.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착실함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실함을.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진중함을. 자신의 의견을 구태여 내놓지 않는 상냥함을. 엄마인 내가 제대로 입 밖에 내어 인정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p104
단순히 '어느 날 위암 선고를 받은 서른 셋의 남자'가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였다면, 어쩌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향인 오카야마에서 도쿄로 온 지 13년. 이탈리안 레스토랑 '트라몬토'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사사모토 료가는 어느 날 극심한 명치 통증과 구토로 병원을 찾았다가 위암 진단을 받는다. 그가 병에 걸린 후의 시간들이 료가 자신과 그의 엄마(여기서는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형제인 교헤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만난 고등학교 동창 야다 이즈미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을 읽다 나는 몇 번이나 울음을 삼켜야 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엄마인 도코가 아들이 몹쓸 병에 걸린 후 자책하는 장면 때문이다. 칭찬받을만한 눈에 띄는 재능이라. 그런 것이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할까. 아이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만하지 않은가.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다정함, 엄마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올려주는 상냥함, 혼자서 쓱쓱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의젓함. 작품 속 료가를 보면서 첫째 아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이가 요즘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칭찬해줄만한 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의 단점에만 집중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 한가득인 이 때 도코의 마음을 묘사한 부분을 읽게 되니 저절로 가슴이 미어졌다. 너무 늦지 않게 이 작품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다.
작품명에 '오렌지'가 들어가서 과일을 가리키는 중 알았는데, 료가가 열 다섯에 아버지와 교헤이와 함께 설산에 올랐을 때 신었던 신발의 색이었다. 료가는 위암 진단을 받고 교헤이와 소변을 보러 갔다가 추락하고 조난된 당시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때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남긴 편지도. 그 편지에 료가가 무슨 말을 적었는지는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지만, 내용을 기억해내지 못할 때조차도 료가는 어쨌거나 필사적으로 살아남았던 그 때를 추억한다. 그리고 이 투병생활도 그 때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면서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 편지를 쓴 열다섯 살 때부터 19년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에 날 만큼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고, 크게 눈에 띄는 일 없이 살아가고......산에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영락없이 행복했다. 과거의 사사모토 료가가 느낀 행복을, 그 후 19년 동안 고스란히 느껴온 것만 같다.
p365-366
작품을 읽는 내내 이 료가라는 인물이 인간적으로 너무나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디 그가 병을 이겨내고 살아남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 와중에도 료가는 자신은 잘 살아왔다고, 좋은 인생이었다고 술회한다. 어쩌면 삶의 마지막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르는 순간, 잘 살았다고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렌지빛으로 빛났던 과거의 소중한 것들을 여전히 기억하면서 미래에 추억할 수 있도록 많은 오렌지빛 기억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료가의 투병 기록을 읽는 것은 괴로웠지만 그들의 가족 이야기는 좋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좋았다. 가족은 무엇인지, 가족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부모와 자식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마음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
출판사 <달로와>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렇게 따스하고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라 신간이 나오면 찾아 읽게 된다. 현재까지 [어제의 오렌지]를 포함해 총 네 권의 작품을 출간한 <달로와>. 앞으로 또 어떤 깊이있는 이야기들로 감동을 전해줄지 기대된다.
** 출판사 <달로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