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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의 남편 ㅣ 이판사판
하라다 마하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2월
평점 :
나의 아내는, 총리가 된다.
제111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소마 린코.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가 탄생하는 날이다.
p11
'지금껏 북스피어가 만들어 온 장르문학의 맥을 이어나갈 도서들로 어차피 이렇게 이름 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고 저렇게 이름 지어도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이판사판'이라는 시리즈 이름은 안 잊어버리겠지'라는 마음으로 만드셨다는 <이판사판 시리즈>. 딱 10권만 만들고 끝내겠다는 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은 하라다 마하의 [총리의 남편]입니다. 맞아요. '아내'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저도 어느새 '총리'라고 하면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서인지 총리의 '남편'이 아니라 '아내'라고 제목을 잘못 발음하게 되는데요, 이 작품에서 총리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입니다!!
이야기는 총리를 아내로 둔 사사 히요리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아내인 사사 린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을 잘 먹이는 일이라고 다짐해보지만 바쁜 아내의 일정을 따라가기란 쉽지 않죠. 그런 그의 직업은 조류학자입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 관찰일기를 거르지 않던 히요리에게, '아내 관찰'이라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나 마찬가지. 뭐, 거의 자의에 의해 하고 있는 일이지만요. 씩씩하고 당차며 머리가 좋은 아내를 총리로 추대한 사람은 뱃속이 시커멓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하라 구로입니다. 어쩐지 구린 냄새가 나지만 42세의 젊은 총리 사사 린코는 소비세 인상, 탈원전, 여성과 청년이 일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하나하나 추진해 나갑니다. 그런 그들의 주위를 맴도는 형사 콜롬보를 닮은 저널리스트. 그리고 검은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되는 배신의 스멜. 게다가 소원해진 부부사이까지. 눈물많은 조류애호눈물과다 초식남인 남편은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까요!
때가 때였던지라 더 인상깊고 재미나게 읽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보다 역시 돋보이는 인물은 역시 사사 린코. 어떤 직업에서든 '여성'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직위가 직위인만큼 저도 여기서는 살짝 붙여볼게요. 허구의 세상에서조차 여성 총리의 배출을 꿈꿀만큼 일본도 어려운 시국이 아닌가 가늠해봅니다. 그 무엇도 숨기는 것 없이 오직 국민을 위해 열정적으로 돌진하는 사사 린코의 모습은 인상적일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총리 자신의 월급까지 제한해가면서 국민들과 어려운 시대를 함께 하겠다는 모습이라니요! 이쯤되면 그녀를 향한 지지율이 과반수가 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게다가 그녀 자신이 여성인만큼 여성이자 정치인으로서 겪어내는 임신과 출산의 무거움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사사 린코도 히요리 씨에게는 날선 모습과 차가운 말을 내뱉기도 해요. 히요리 씨는 모두 자신의 부덕 탓이라며 눈물바람을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린코가 아내로서 남편에게 부릴 수 있는 응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팎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히요리 씨만은 그런 자신의 예민함도 받아줄 것이라 믿는 굳건한 부부 사이를 증명하는 모습이겠죠. 만약 그녀가 히요리 씨에게마저 다정하고 완벽했다면 인간적인 매력을 떨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판사판 시리즈>의 첫 번째 주자가 쎈 언니 기리노 나쓰오였기에 이 시리즈는 쎈 사람만 등장하나 싶었는데, 이번 이야기는 현실 풍자적인 모습은 보일지라도 쎈 언니에 비해 강도는 다소 약한 느낌입니다. 쎈 이야기만 들려주실 건 아닌가 봐요. 세 번째 주자는 누가 될지 개인적으로 기대가 큽니다!
역시 현실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총선이 끝난 지금, 앞으로 5년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이 되어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