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 박물지 - 인문학과 미학을 넘나드는 이어령의 시선 63
이어령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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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고르다보면 그저 다같은 그림책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창작, 과학, 사회, 수학, 예술. 다방면으로 관심을 가지게 해주려다보니 저도 이런 분야, 저런 분야 책들을 수집(?)하듯이 사거나 얻어서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 중 애정을 가지게 되는 분야는 역시 역사와 문화 관련 쪽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전통문화가 등장하는 책들에는 제가 유독 욕심이 나서 들춰보게 되는데 제가 봐도 잘 만들어진 책들이 참 많더라고요. 아직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이제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게 되어버린 전통들에 대한 애정이 책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역사와 문화 관련 책들도 더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데요, 이번에 만난책은 돌아가신 이어령 선생님의 [우리 문화 박물지]입니다. 갓, 문, 호미, 한복 등 일상 속 63가지 사물들을 선생님만의 시선으로 만난 한국문화와 디자인에 관한 책이예요.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다보면 전통문화와 관련된 단어들을 설명할 때 너무나 부족하다고 여기던 요즘, 이 책을 읽고나니 예전보다 조금은 쉽고 풍부하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듯 모르는 듯, 낯섦과 익숙함이 뒤섞인 듯한 소재들 속에서 저의 눈길을 처음 잡아끈 것은 <낫과 호미>였어요. 이 농기구에서조차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발견하고 탄성이 나왔다고 할까요. 낫은 잘못 휘둘렀다가는 상대방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손가락이나 발을 베기가 쉽대요. 생김새 자체도 안으로 구부러져 있지만 칼날 역시 안으로 나 있어서 남을 공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하면 서구 사회의 농기구는 날이 밖으로 서 있는 것이 많고 생김새도 창처럼 꼿꼿한 것이 많다고, 그래서 그것들은 금세 무기로 바뀔 수 있는 공격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알고 보니 농기구에마저 우리의 감성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아 고새 보는 눈이 더 사랑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장독대. 아이들 유치원에서는 해마다 고추장과 된장을 새로 담아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런 행사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원장님을 보면서 이제는 집에서 장을 담근다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부터도 시댁이나 친정에서 주시지 않으면 아마 사먹었을 테니까요. 그런 유치원 한 켠에 놓여있는 여러 항아리들. 첫째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갔을 때 이게 뭐냐며 신기해하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그런 장독대를 선생님은 '가정의 제단'이라 이름붙이셨어요. 장독대에서 가정의 맛과 평화를 지켜온 수많은 여인들. 마음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고서야 제대로 된 장맛을 얻지 못했던 그 긴 시간들과 수고들. 

 

내용도 내용이지만 저는 선생님이 하나하나의 소재에 붙이신 제목들을 읽는 즐거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담뱃대 : 노인들의 천국>, <박 : 초가지붕 위의 마술사>, <물레방아 : 환상의 바퀴> 이런 식으로 덧붙인 맛깔나는 묘사에 빠져들어 한참 입 속에서 읊조렸답니다. 비록 이제 더는 새로운 글들을 만나볼 수는 없겠지만 남겨놓으신 글들을 찬찬히 음미해보고 싶습니다.

 

**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디자인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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