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라이프 - 삶을 마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사 료코 지음, 천감재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신 3차를 접종하고 난 뒤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기운도 없어서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어요. 두통약을 먹어도 그때 뿐, 뒷머리부터 뻗어올라오는 통증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구나 싶은 생각에 허겁지겁 옷을 주워입고 병원으로 향했어요. 아이들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너무나 평범하게 자라온 저였기에 그 때가 가장 죽음을 눈 앞에서 느낀 시간이었어요.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던 순간,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하지, 저의 걱정은 그 하나 뿐이었습니다. 

 

웅덩이에 뜬 물거품은 때로는 사라졌다 때로는 나타나니 오래도록 머무는 법이 없다. 이 세상 사람과 거처 또한 이와 같다. 

p 23

 

[엔드 오브 라이프]는 삶의 마지막 순간 재택의료를 선택해 자신이 결정한대로 살았던 환자들, 그 옆을 지켜온 가족, 의료진의 이야기를 통해 '아름다운 마지막'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재택의료 현장에서 만난 환자, 보호자, 의료진 들을 취재하고 그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논픽션이에요.  2018년, 저자의 친구이자 200명 넘는 환자의 임종을 지켜봐온 방문간호사 모리야마가 췌장암에 걸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일본에서 권위있는 논픽션 상을 수상한 저자 사사 료코에 의해 여러 사람들의 삶의 마지막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 작품이 특히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저자의 어머니가 정신이 또렷한 채로 운동 기능을 잃어가는 '락트인 증후군'으로 오랜 시간 재택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어머니의 곁을 헌신적으로 지키고 있는 사람은 저자의 아버지. 부디 옆에만 있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돌보는 아버지를 지켜봐온 저자였기에 더욱 '죽음'을 테마로 한 작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요. 

 

이 길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으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조개캐기에 나선 여성, 대화와 음악을 나누며 차분히 마지막을 준비하는 남성,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가족들을 원망하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남성 등 다양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결국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보기 시작한 한 드라마에서 죽음을 앞둔 친구에게 한 여성이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시한부가 되어달라'고.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친구에게 건넬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담아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꼭 기억하고 싶은 대사였어요. 

 

저자는 환자의 마지막 뿐만 아니라 의료 현실, 환자를 대하는 주치의의 태도 또한 언급하는데요, 주치의가 얼마나 인간적인가 하는 점이 환자의 운명을 바꿔놓는다고 말하는 한 인물의 증언에서 그 동안 자잘하게 만나왔던 의사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재택의료 실정은 어떤가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무엇이든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던 작품 속 의료진들. 그들은 아마도 무엇이 환자들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고 가치있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해주는지 은연 중에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사실 평소 이런 내용은 잘 읽지 않는데요, 읽다보면 우울해지기도 하고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죽음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재택의료라는 새로운 환경, 나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법 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했던 인상적인 이야기였어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인 환자들. 그들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엔드 오브 라이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스튜디오오드리> 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