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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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저녁싸리 정사]로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 렌조 미키히코. 무척 오래된 작품이지만 어딘가 끈적거리면서도 독자를 휘감는 매력이 대단해 개인적으로 그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그의 [백광]은 네 살 여자아이의 죽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진실게임이에요. 유난히 뜨겁던 여름날 가정집 안마당에 파묻힌 채 발견된 나오코. 소녀의 죽음 뒤 이어지는 인물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깊은 죄책감을 품고 있어 과연 이 중 누가 범인인가 모두를 의심하게 만들어요. 아이가 사망할 당시 불륜을 즐기던 아이의 엄마, 그녀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던 아이의 아빠,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간 이모, 아이와 함께 집에 남아있던 치매 걸린 할아버지, 잠깐 집에 들렀던 이모부, 그리고 그 시각 황급히 집을 나섰던 정체불명의 남자까지. 

 

일곱 명의 증언 뒤에는 각자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존재합니다. 각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서로를 향한 증오와 오해가 거미줄처럼 얽혀 독자를 얽어매고 있어요. 그 느낌은 마치 끝이 없는 늪에 빠진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막막하고 절망적이에요. 대체 무엇이 소녀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것인가. 결국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희생된 슬픈 사건인가 씁쓸함을 느끼고 있을 때 머리를 강타하는 반전!! 결국 이 사건은 모두가 범인이자 모두가 희생자인 출구 없는 연극이었던 겁니다. 

 

결국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 싶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또 다른 의심들. 결국에는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집니다. 마지막 결말을 보고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조차도 어쩌면 환상이 아닐까, 진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사람이 들었던 환청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던 가정. 하지만 그것은 모래 위에 지어진 집, 환상을 발판으로 금방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던 신기루였습니다. 

 

출판사 모모는 '범인의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드립니다'라는 문구로 이 작품을 홍보하고 있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놀라지 않겠다!'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어요. 하지만 누구라도 이 작품의 결말을 보고 나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절망감에 출판사의 홍보가 얼마나 자신만만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겁니다. 동료 작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전대미문의 미스터리. 역시 렌조 미키히코!라는 그의 이름의 무게를 실감한 엄지 척 작품입니다. 

 

**<모모>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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