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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 있어요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1년 12월
평점 :

초등학교와 연계된 커뮤니티 센터 안에 자리잡은 도서실. 사서 현장 실무 중인 모리나가 노조미와 함께 도서실을 지키는 또 한 명의 인물은 레퍼런스 룸에서 양모 펠트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고마치 사유리. 커다란 몸에 턱과 목의 경계가 없는 흰 살갗, 바짝 올려 묶은 경단 머리의 그녀를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백곰, 어떤 사람은 마시멜로 맨, 누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 베이맥스, 또는 만화 <란마 1/2>에 나오는 사오토메 겐마, 혹은 가가미모치. 연신 바늘을 찔러대는 기세에 처음 만나는 사람은 위축되기 마련이지만 주문과도 같은 고마치의 한 마디를 들으면 그대로 끌려들어가고 만다.
뭘 찾고 있지?
도서실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어울리는 책을 추천해주는 사유리. 원래 목적이었던 책은 물론, 마지막에는 고개를 갸우뚱할만한 책을 꼭 집어넣어 프린트 해준다. 다다다다다 자판을 두드리고 탕! 프린트 하는 그녀의 엄청난 에너지의 영향으로, 얼떨결에 받은 추천도서 목록에 의해 인생이 바뀌어가는 사람들. '한 번 가볼까?'하는 마음으로 우연히 도서실을 찾은 다섯 사람의 빛나는 성장기가 펼쳐진다.
직업에 회의감을 갖는 사회초년생 도모카, 원래 꿈꾸었던 일 대신 다른 일을 하며 답답함을 느끼는 료, 임신과 출산으로 열정적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입지가 좁아진 나쓰미,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현재는 백수인 히로야, 65세 정년 퇴직자인 마사오까지. 처한 상황과 인물은 모두 다르지만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우리 모두 인생의 굽이에서 한 번씩 맞닥뜨릴 고민이 열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아마 자신이 어느 연령대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은 각각일 것이다.
내가 크게 공감하며 읽은 사람은 역시 나쓰미였다. 나이대도 비슷한 데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섬세하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에 모든 것을 바쳤고,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복직할만큼 열정도 넘쳤지만, 이제 회사는 예전처럼 그녀를 대우해주지 않는다.
독신인 사람이 결혼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결혼한 사람이 아이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그리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독신인 사람을 부러워하죠.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 참 재밌어요. 저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의 뒤꽁무니만 쫓느라 일등도 꼴찌도 없답니다. 즉 행복에는 우열도, 완성체도 없다는 얘기죠.
p199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도 달라지고, 달라지려고 해도 그대로일 때가 있는 거지.
p 208
나쓰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인생에는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에 열정적일 때가 있으면 가족과 아이에 충실해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고, 그 시기가 지나면 또 다른 일에 몰두하는 때가 온다는 것.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시기 집중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놓쳐버린 후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점 아닐까. 아이들을 낳은 이후로 머리속에 늘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살아온 나에게, 나쓰미의 삶은 참고가 될만한 이야기였다. 다가오는 새해,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놓치고 나서 후회할 일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일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흘러가는 물결을 거스르려 하고 벗어나려고만 하는 데서, 대부분의 괴로움이 생겨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보석처럼 빛나고 소중하다. 정년퇴직을 맞이해 마치 발걸음을 처음 내딛는 아이 같은 심정이 된 마사오의 삶도, 어쩌면 앞으로 더 반짝반짝 빛나게 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의 인연에 연결되어 있어 위로받는 사람들. 그 중심에 고마치 사유리가 있다. 그녀가 추천한 책들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 인물들도 대단하지만, 나는 역시 고마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책을 누군가한테 추천해주고, 그 책으로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하게 해주는 일. 도서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이고 멋진 인물이었다! [도서실에 있어요] 가 시리즈로 계속 나와주길!!
그러고보니 '도서실에 있는 건' 무엇일까. 사유리? 아니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단서??!!
** <달로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