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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안다'라는 명언을 남긴 소크라테스. 뭐든지 다 아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이 명제에 역행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구루메 선생입니다. 학생 중 한명인 구사카베를 향해 일방적인 단정을 내리고, 자기가 내린 그 단정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는, 요즘 사람들이 지칭하는 말로 '꼰대'의 전형으로 보여요. 남자아이가 연분홍색 스웨터를 입으면 '옷을 여자처럼 입었다'는,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인지도 모를 말을 남겨 아이들에게도 편견과 선입관을 심어주는 그를 보고 있자니 제 마음 속에서도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런 구루메를 향해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아이는 얼마 전 전학온 안자이입니다. 제법 똘똘해보이는 안자이는 '교사 기대 효과'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설명하면서 구루메가 구사카베에게 내린 단정을 뒤집고자 해요. 그 중 하나가 학교에 방문한 프로 야구 선수에게 부탁해, 구루메 선생 앞에서 구사카베를 칭찬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를 넘은 칭찬은 할 수 없다던 야구 선수는 여느 때처럼 구사카베의 자세를 비난하는 구루메 앞에서 '너한테는 소질이 있어'라는 천상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구루메는 너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며 다시 한 번 구사카베의 기를 죽이려 하지만, 그 순간 구사카베는 그 동안 안자이가 전달해준 주문을 마침내 입밖으로 내뱉으며 독자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선사해요!
선생님,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p65
표제작 <거꾸로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작품집은, 아이들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학교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작은 미소를 머금게 해줍니다.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들이 이어달리기 경주에 나가게 되어 고민하는 모습이라든지, 친구가 새아빠로부터 학대를 당한다고 생각해 어떻게든 도우려는 모습은 무척 따스하게 다가와요. 게다가 왕따 문제 등을 소재로 인생의 진한 맛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이혼가정에 옷차림이 후줄근한 동급생을 놀리고 자신의 아빠를 자랑했는데, 알고보니 그 동급생의 뒷배가 더 대단했던 이야기는 통쾌함까지 맛보게 해주죠.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어느 정도는 현실적이고 냉정하지만, 결론은 따스하고 뭉클하기까지 해요. 혹자는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팍팍한 현실 속에서 소설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지 아니하겠습니까.
저는 특히 <비옵티머스>와 <거꾸로 워싱턴>에 담긴 작가의 이야기가 좋았어요. 지금 당장은 누군가를 괴롭히고 놀리면서 즐거워할 수 있지만, 인생의 어느 굽이에서 상대를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 지 모른다는 말. 갑자기 몸이 아파 응급실에 갔는데 담당 의사가 예전에 자신이 괴롭히던 동급생이라면 조금은 두렵지 않겠냐는 예시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통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다른 아이를 놀리고 난처하게 만들면 안 되냐는 당돌한 아이들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면, 현실의 그들은 어떤 얼굴을 할 지 궁금하기도 해요.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불쌍하게 여기면 돼. 이 사람은 자기 혼자서는 재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불쌍하다. 그렇게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은 결국 자기 혼자 힘으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인 거야.
p176
정직한 사람이 칭찬받는다는 게 좋아.
p262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아 뒤숭숭한 요즘,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랬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으니 제가 학교에 있을 때의 학생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도 많이 있겠죠. 하지만 역시 저부터 되돌아보고 싶었어요. 예전의 나는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했었나,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통해 제 안에도 분명 바뀐 부분이 있을 거라 믿어요. 적어도 '거꾸로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늘 최선의 답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봅니다.
** <소미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