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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경한다는 그 분, 레이먼드 챈들러.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없는 작가의 이름과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는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대표합니다. 한밤의 어두운 골목을 조용히 누비는 듯한 어딘가 쓸쓸한 분위기, 정의가 아닌 이성과 수임료로 움직이는, 약간은 세속적인 인물상. 제가 아는 하드보일드 스릴러 작가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일본 작가 하라 료 뿐인데요, 사실 저는 이 스릴러 장르를 하라 료를 통해 먼저 접했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가 있는 줄 최근에야 알았어요! 에헷.
레이먼드 챈들러 작품 중에는 '필립 말로'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제일 유명한 것 같지만, 일단 맛보기(?) 식으로 [살인의 예술](영미문학) 부터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어디가서 쫙 펼쳐놓고 보기에는 다소 민망한 제목이쥬. 총 다섯 편의 단편집이 실려 있어요. 처음에는 한 명의 탐정이 다섯 개의 사건을 해결하는 연작인 줄 알았는데 각기 다른 탐정 다섯 명의 다섯 가지 사건파일입니다. 하지만 작품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고요하고 어두워요. 그 속에서 스윽, 오직 탐정만이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고독한 늑대처럼 움직입니다. 물론 수임료에 약해요. <황금 옷을 입은 왕>의 스티브는 빨리 와달라는 의뢰인의 말에 출장비로 200달러를 요구합니다. 서슴없이 알겠다는 의뢰인과의 통화를 끝내고 '이 머저리 같은...' 이라며 욕설을 내뱉는데요, 다른 분들은 어찌 해석하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좀 더 요구할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 같은 기분이 느껴져 살짝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이 작품집에서 사건 해결은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건해결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역시나 분위기와 문체입니다. 감정적이지 않은 건조한 문체는 마치 탐정 본인의 것처럼 여겨져요. 여기에 저의 이미지상, 육중한(?) 체구임에도 날렵하게 움직이는 몸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탐정의 모습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하라 료의 <사와자키 시리즈> 의 탐정 사와자키는 제 머릿속에서는 좀 더 왜소하고 나이 든 사람으로 그려져 있어서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더 잘 어울렸는데, 이 작품집에서는 그런 고독한 느낌보다는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쥬.

이 단편집을 읽다보니 '필립 말로'가 당연히 궁금해질 수밖에요. 아마 시리즈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와 '필립 말로'의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한 [기나긴 이별]을 먼저 읽어야 하나, [빅 슬립]을 먼저 읽어야 하나 고민입니다. 혹시 추천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레인보우퍼블릭북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