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뒤란에서 소설 읽기 2
V. E. 슈와브 지음, 황성연 옮김 / 뒤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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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린에게는 가져서는 안 되는, 절대 가지기를 원해서는 안되는 욕구가 있습니다. 다른 여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지, 마을 가장자리 너머 무언가를 꿈꿔보겠다는 희망. 하지만 1714년의 아들린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요. 여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부모님의 종용에 원치 않는 결혼식을 앞둔 그녀는, 결국 절대 찾아서는 안 되는 신을 향해 소원을 빌며 숲 속을 내달립니다. 아들린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자유로운 삶. 그녀의 영혼을 대가로 아들린의 소원을 들어주는 어둠의 신. 하지만 그 때는 몰랐겠죠. 그 자유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을 삶이, 결국은 모든 것으로부터 기억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내 이름은 아들린 라뤼다......그녀는 그 이름을 사랑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은 말을 할 수도 없다. 자신을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머릿속에만 있을 것이다. 아들린은 원치 않았던 결혼식 전날 밤에 비용에 버리고 온 여인이다. 하지만 애디. 애디는 에스텔이 준 선물이었다. 더 짧고, 더 날카로운 이름으로, 말을 타고 시장으로 갔던, 지붕 너머를 보려고 애를 썼던 여자를 위한 이름. 더 큰 이야기들, 더 큰 세상을 그리고 꿈꾸었던, 모험으로 가득 찬 삶을 꿈꾸었던 여자를 위해 살짝 변화를 준 이름이었다. 내 이름은 애디 라뤼다......


p 115

 

그녀의 존재는 이제 마치 한 줄기 바람같은 것. 잠시만 시선을 돌려도, 그녀와 함께 있던 자리를 벗어나기만 해도, 문 너머로 사라지기만 해도, 하룻밤 꿈결같은 시간을 보냈을지라도 잠들어버리면, 사람들은 그녀를 잊어버립니다. 애디는 이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소리내어 말할 수도 없고, 그 어떤 수단으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없어요. 고통은 느끼되 죽을 수 없었던 시간들. 3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어둠, 뤽은 그녀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부추기죠. 하지만 그런 삶이었음에도 애디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 고통과 외로움은 떨쳐낼 수 없을망정,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이런 삶조차도 소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데자뷔, 데자쉬, 데자베퀴.

이미 보았음. 이미 알고 있음. 이미 살아보았음.


p 100

 

처음이 아니나 처음인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들 속에서 발견한 서점 직원 헨리. <오디세이>를 훔친 그녀를 기억하는 단 한 명의 사람입니다. 기적과도 같은 사랑에 기뻐하는 두 사람.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하고 다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들 앞에, 역시나 두고볼 수 없다는 듯 어둠이 등장하죠. 그들이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먹이는 뤽 앞에서 애디는 결국 선택합니다. 비록 두 사람이 평생 함께할 수 없을지라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요. 애디는 300년 전의, 헨리를 만나기 전의 그 애디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둠조차 알아채지 못할 방법. 그녀에게는 앞으로도 시간이 많고, 헨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끝.

그것은 현재, 오로지 현재만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 이어지는 문장이다. 헨리는 이야기의 완벽한 쉼표였고, 그녀가 숨을 고를 기회였다......하지만 그것은 선물이었다.


p 697

 

700페이지나 되는 벽돌책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손가락 사이로 문장들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술술 읽혀서 글자들을 붙잡고 싶을 지경이었어요. 게다가 작가님이 창조해낸 문장들, 왜 이리 시적이고 아름다워서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지. 한번에 쭉쭉 읽는 게 너무 아까워서 집중하다가도 한 번씩 고개를 들고 크게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애디의 300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몰라요. 그저 순식간에 읽어버리기에 너무나 안타까워서, 애틋해서, 그럼에도 이 시간 속에 나는 살아간다는 것에 작은 안도감을 느끼면서.

 

스스로는 흔적을 남길 수 없었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을 통해 결국에는 자신의 이름을 남겨왔던 애디. 부모님과 에스텔로부터 '몽상가'라는 조롱과 경고를 들었던 그녀의 삶이 어떤지 보세요.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고, 평범하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늘 꿈을 꾸고 있었던 그녀가 결국 무엇을 느끼고 보게 되었는지. 강인한 그녀는 이번에도 어둠에 지지 않을 거라 믿어요. 애디는 지금 이 순간 더 넓은 세상을 꿈꾸고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캐릭터가 될 것입니다.

 

 

빅토리아 슈와브의 작품이 국내에 이 한 편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워요. 작가님이 선물해주었던 꿈같은 시간들. 파리의 거리,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맛보았던 짜릿한 시간들이 지나가버렸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기다림 후에 또다시 그녀의 작품들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로맨스와 판타지의 결합. 또 어떤 꿈을 꾸게 해줄지 벌써 기대됩니다!

 

** 출판사 <뒤란>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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