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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걱정 ㅣ 수피아 그림책 5
초모 지음 / 수피아어린이 / 2021년 10월
평점 :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지만, 예전의 저는 지금보다 훨씬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강박도 심했어요.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외출하기 전에 가스렌지 안전밸브를 서너 번 확인하는 건 물론, 현관에 도어락이 설치되기 전에는 열쇠로 문이 제대로 잠긴 건지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습니다. 어느 때는 문에 매달려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심했는지 상상이 가실까요. 잠들기 전에는 카드나 열쇠가 제자리에 있는지 꼭 확인해야 했고, 깜빡 잊고 불은 껐을 때는 다시 일어나 확인을 해야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저는 뭐가 그리 불안했던 걸까요. 왜 그렇게 제 자신을 믿지 못했던 걸까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지금은 이상하게도 예전의 그런 강박들이 없어졌어요. 심지어 요즘은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찾으러 다니는 게 일입니다. 대신 아이들에 대해 느끼는 불안-일어나지 않은 무서운 일에 대한 상상-이 새로 생겨났지만, 그것은 예전의 저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여겨져요. 그리고 그런 불안을 바탕 삼아 자신을 다잡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니,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봐야 할까요.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걱정해봐야 그 걱정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 정도면 저 많이 발전한 거겠죠?
까망이의 걱정도 끝이 없습니다. 낙엽 가루, 무지개 설탕, 바람 크림, 머리 위를 떠다니는 먹구름을 모두 모아 섞은 다음 마지막으로 뚝뚝 흐르는 눈물들을 넣어 만든 까망이만의 특제 수프. 혼자서는 다 먹지 못할 양의 수프를 만든 까망이는 그 수프를 앞에 두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웃 친구들을 초대해 수프를 나눠 먹기로 결심한 후 초대장도 만들지만 이 초대장도 바람에 날아가 버려요. 누군가가 찾아오지는 않을지, 혹은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떨지 고민하는 까망이에게 초록이가 찾아옵니다.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려는 까망이. 이런, 그런데 잠든 까망이 머리 위에 또다시 먹구름이 가득해집니다.
머리 위에 먹구름을 만든 채 잠들어 있는 까망이를, 저는 안아주고 싶었어요. 다른 이가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는 그 걱정이 까망이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 알 수 있었거든요. 까망이는 이대로 불안을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가, 걱정도 잠시, 그 불안을 해소시켜 줄 존재들이 맨 뒷장에 나타납니다. 불안은 스스로는 어쩌지 못해요. 머리로는 이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으니까요. 다만, 감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불안을 해소시켜줄만한 무언가가,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지 모를 저의 강박이, 왜 때문에 갑자기 사라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 마음 속 무언가가 채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다보면, 제가 눈물콧물 다 빼고 아이들은 멀뚱 앉아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요, 역시나 이번에도 그러했습니다. 요즘 그림책은 어린이보다 어른을 더 겨냥하고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왜 이리 심금을 울립니까. 여러 번 읽다보니 더 먹먹해지는 그림책. 까망이의 걱정도 이렇게 점점 사그라들고 머리속 먹구름이 필요없는 날이 오기를 살짝 빌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