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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통행증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1년 11월
평점 :

이상하죠? 전 겨울만 되면 군고마를 앞에 두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와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라요. 제가 기억하는 한, 저희 할머니는 군고마는 사주셨지만 옛날 이야기를 해주신 적은 없어요. 혹시 그런 일이 있었지만 무의식 안에서만 기억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튼 그래서인지 '겨울=옛날 이야기'라는 공식 아닌 공식을 가지고 제 독서 뿐만 아니라 아이들 독서에도 적용시키고 있더라고요! 유독 전래동화를 찾아 읽게 되는 계절. 이 계절에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 시리즈'만큼 딱 좋은 이야기도 없을 겁니다!
저는 소설만큼이나 역사도 좋아해요. 부족한 사람인지라 역사의식, 뭐 이런 게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뜁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만큼 그들도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시간을 채워왔다는 생각만 해도 뭔가 아련하고, 그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던 재미는 뭐였을까 이런저런 공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아마 그들도 이야기는 좋아했겠죠?! 그 중에서도 특히 괴이한 이야기, 캬! 여기 에도 간다 미시마초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의 도미지로는 그런 괴이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답니다.
시집을 간 오치카 대신 청자의 자리에 앉게 된 도미지로. 이야기꾼 한 명에 듣는 사람도 한 명, 한 번에 하나의 이야기를 청하여 듣고 그 이야기를 결코 바깥에 흘리지 않으며,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린다'는 이곳에 한 명의 무사가 찾아옵니다. 그가 들려주는 '큰북 소방대'와 '큰북님', 그리고 신묘한 능력을 가진 '터주님'에 대한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어요. 도미지로가 자주 경단을 사 먹으러 가는 노점의 아가씨 오미요와 멋진 은발의 할아버지가 되었으나 한 때는 '깃토미'라 불리던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이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사람 사는 세상 어디든 똑같구나, 어디에나 비열하고 못된 인간들과 그들에게 당해 눈물 흘리는 사람은 있구나-라는 생각에,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있는 세상이 전혀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러 오는지도 중요하지만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역시 청자인 도미지로 캐릭터입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솔직하고 마음씨 착하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익살맞은 '도련님'이에요. 오치카가 아기를 가졌다는 말에 너무 놀라 '막대처럼' 쓰러지고 마는 허약한 남자지만, 청자 자리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서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야기를 듣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야무지고 단정한 오치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고 할까요. 오히려 어딘가 빈틈이 느껴지는 도련님이기에 이야기하러 오는 사람들도 더 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세 편의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기이한 일도 결국에는 사람의 의지가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 벌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터주의 뒤를 이어가는 것도, 분명 그럴 수 없었을 텐데도 아기들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도,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어 무뢰배들을 혼내주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간절한 바람의 결과.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시쥬??!! 그렇다면 [영혼 통행증]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듣다보면 계속 듣고 싶어지는 이야기들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