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티 Rome City - The Illustrated Story of Rome
이상록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로마라고 하면 여행 에세이든 역사책이든 가리지 않고 관심을 갖는 편이지만 이 책은 인터넷서점에서 발견하고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섬세하고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잔뜩 실려있거든요. 이래서 제가 인터넷서점 구경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옆지기는 사지도 않을 거면서 뭘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느냐고 하지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저의 이런 취미도 이해하실 거예요.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보는 재미와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 가운데에서 내 취향에 딱 맞는 책을 발견하면 얼마나 즐거운지 말이에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보물같은 책이라 여겼던 덕분인지 순식간에 읽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의 바람이 통했는지 운좋게도 25일동안 매일, 챕터에 맞춰 천천히 저자가 보여주는 로마의 길을 걸으며 경이롭고 역동적인 역사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역 지하엔 여느 도시의 역들과 다를 바 없이 현대식 상점이 늘어서 있다. 맥도날드의 풍경 또한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벽의 잔해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도시라면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따로 구역을 분리해서 보존할 것 같은 2500년 전 유적 위에 맥도날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p23

 

세상에, 이런 멋진 도시 보셨나요!! 유적 위에 맥도날드가 있고 언제 어디서나 과거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도시라니요! 그 곳에서라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고대 로마의 분위기를 음미하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늘상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글만 읽어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게다가 후세 사람들이 건물을 지을 때 옛 건물의 잔해를 해체하지 않고 그 위에 새 건물을 짓는 바람에 지하에는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이 파묻혀 있다고 해요. 마치 한 편의 환상동화처럼, 지하로 구멍을 파고 내려가 그 밑을 탐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오릅니다. 절대 직접 실행할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죠.

 

로마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몰라도 이름 한 번은 들어봤을 카이사르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고, 그 거대한 로마 제국을 짊어지고 있었던 황제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메멘토 모리'와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죽음을 잊지 마라. 그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뒤를 돌아보라. 지금은 여기 있지만 그대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p 167

 

개선식의 주인공인 개선장군이 탄 전차에는 주인공 외에 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개선장군 귓가에 경고의 말을 속삭여주는 사람.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결국은 그 또한 유한한 인간임을 잊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 권력과 욕망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라는 의미로도 들리지 않나요. 유한한 존재인만큼 느낄 수 있는 삶의 행복과 슬픔. 로마인들은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채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을 것 같지 않나요.

 

역사 이야기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도 풍부하게 실려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로마를 다루면서 어떻게 예술이 빠질 수 있겠어요. 로마 고유의 문화 뿐만 아니라 로마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 격동적인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때로는 아름다움을, 때로는 파괴를 감내해야 했던 로마. 그리고 그 도시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을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을 생각하면, 로마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로마에게 매혹당해 그 안에서 살고, 죽어갔던 사람들. 그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나라는 존재는 정말 티끌에 불과하다는 느낌에 장엄한 기분마저 들어요.

 

책을 읽다보니 로마의 마성에 더 끌려들어간 듯한 느낌입니다. 언제쯤 되면 이 매력적인 도시를 바이러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찾게 되려나요. 책으로나마 로마를 향한 동경과 그리움을 달래보려 했건만 오히려 부채질만 한 것 같아요. 여전히 변화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탈리아, 그리고 로마. 많은 유적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흔적만 남기고 있지만 고대부터 로마가 만들어낸,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유산 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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