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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 플레이어 그녀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평점 :

'브누아 필리퐁'이라는 작가의 이름만 접해도 가슴이 설레는 독자라면 분명 [루거 총을 든 할머니]를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루거 총을 든 할머니, 베르트를 만난 것은 2019년의 한여름이었어요. 그 때의 리뷰를 돌아보니 '올해가 가기 전 이 작품을 뛰어넘을 작품이 있을지 궁금하다'라고 적었네요. 남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베르트의 노련한 입담을 빌려 여성의 솔직한 욕망과 사람들의 그릇된 가치관에 일침을 가한 그 감동과 여운은, 여전히 제 가슴에 살아남아 자그마한 불씨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브누아 필리퐁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말에 어찌 기쁨의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건 읽어야 돼!!' 라며 광란의 손놀림을 보인 결과 드디어 품에 안은 [포커 플레이어 그녀].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포커라는 세계에서 주인공 '막신'이 보여줄 통쾌한 한방을 기대하며 도착하자마자 새벽을 불태워 읽었답니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의 베르트와 [포커 플레이어 그녀] 막신 사이에는 온도 차이가 존재해요. 베르트가 걸출한 입담과 행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뻥뻥 뚫어주는 존재였다면, 베르트에 못지 않은 상처를 지닌 막신은 그 자체가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쉽게 속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베르트를 사이다에 비유한다면 막신은 우리나라의 '장'같다고 할까요. 된장, 고추장, 간장할 때 그 '장'이요!! 시간이 오래 흘러야 그 진가를 발휘하는 '장'들처럼, 막신의 내면은 잔혹한 상처들로 가득차 있지만 언젠가 복수할 그 날만을 기다립니다. 아주 오래. 하지만 복수가 실행되는 날, 유감없이 모든 것을 터뜨려버려요. 그런데 이 복수로 인해 밝혀지는 진상은, 마음을 개운하게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깊은 슬픔과 경악을 안겨주기도 했답니다.
작품에는 막신을 도와 복수에 가담하는 작크와 발루도 등장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발루의 상처는 너무나 비극적이라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어요. 가족들과 떠난 여행에서 사고를 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아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발루. 그런 발루가 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막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어린 천재 장(이름이 장입니다)을 만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막신에게 벌어졌던 일, 포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두운 부분들 때문에 대체로 음침한 분위기이지만, 발루와 장의 모습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유쾌한 프랑스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 '장'에 대해 말씀드렸죠. 저는 한 번도 '장'을 담궈본 적이 없지만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건 알아요. 베르트는 우리에게 쉽게 사이다를 먹여주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막신에게는 애정을 많이 쏟으셔야 그녀의 베일을 벗기실 수 있을 거예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작과 동일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 비틀린 가치관에 대한 직언. 하지만 그 세계는 한층 더 깊어졌고 촘촘한 밀도를 자랑합니다. 보다 업그레이드된 브누아 필리퐁의 세계,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