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사진협찬 : 이다랜드 님

 

[변신]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몰라도, 프란츠 카프카라는 작가의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어느 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는 문장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 솔직히 나는 이 모든 일이 '그러나 꿈이었다' 식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잠을 자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벌레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백번 양보해 변할 수 있다고 쳐도, 자신의 몸이 그렇게 변화하는 것을 느끼지 못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몸을, 그레고르 잠자는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에게는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보다 더 끔찍하고 잔혹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에게 일자리를 잃는 것은 벌레로 변하는 것보다 더 슬프고 공포스러운 일. 때문에 순식간에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일 틈도 없이, 어떻게든 회사에 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은 더욱 애달프게 다가온다. 이런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껴진 것은 우리 모두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 어떤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해도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각각의 일터로 달려가야 하는 현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지만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가족들과 회사 관계자가 경악한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벌레로 변한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 뒤에 일어난다. 오직 자신만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하는 줄 알았던 이 가정에서, 사실은 나머지 가족들 또한 하려고만 했다면 어떻게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밝혀지는 것이다. 아버지는 수위로, 어머니는 바느질로, 여동생은 점원으로 취직해서 그래도 생활을 이어나가는 상황. 슬픈 일은 이렇게 가족들이 각각의 몫을 해내게 되면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의 존재를 하찮은 것으로 취급해버리게 된 것이다. 과연 그레고르 잠자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이 인간을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가족이라는 사람들도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잠자를 혐오하며 더러운 존재로 인식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아이들이 벌레로 변해버린다면, 나도 그레고르 잠자의 어머니처럼 벌레로 변한 아들을 피해다니며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을까. 결말에 간단히 수긍할 수 없었으면서도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한동안 머리가 멍-했다.

 

그레고르 잠자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 하다. 구로사와 이즈미가 쓴 [인간에 맞지 않는]에서도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아들을 마주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처음에야 물론 충격에 휩싸이지만, 그녀는 어쨌거나 자신이 배아파 낳은 자식이므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진다. 작가가 이 [변신]을 모티브로 작품을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너무나 상반되는 두 어머니의 모습. 당신이라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아이와 대면할 것인가.

 

 

이번에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한 번 읽고 끝낼 작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읽은 책은 또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기도 했고, 처음 읽는 작품은 이제야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기분. 이 [변신]은 나중에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것인가. 지금은 서늘한 바람이 마음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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