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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은밀한 취향 -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곽희원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10월
평점 :

'왕'이나 '왕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감정이 떠오르세요? 저는 일단 갑갑해요. 매일 법도와 규범에 둘러싸여 자유로운 생활 없이 늘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어떻게 하면 건방진 신하들을 회유하여 정사를 잘 돌볼 수 있을까 머리도 써야 하고, 현명하고 어진 왕이라면 백성들의 생활까지 걱정해야 하니 왕이란 자리가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 의문이 들어요. 왕비는 또 어떻고요! 후계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막중한 의무감, 내명부 안에서의 권력다툼. 으아, 그냥 좀 가난해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더라도 평민의 삶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여가가 있었겠나-싶었는데, 있었답니다! 왕과 왕비에게도 사적인 취미와 오락이 있었다니,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동물 애호가들도 있었고, 꽃과 나무에 심취한 왕들, 그림과 소설에 빠진 사람들, 도자기에 관심을 가진 왕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선에도 고양이 집사가 있었다는 것, 아시나요? 바로 효종의 딸인 숙명공주와 숙종이었답니다. 숙명공주가 고양이에게 얼마나 빠져 있었던지 왕이자 아버지인 효종이 손수 편지를 써서 '어찌하여 고양이를 품고 있느냐'며 꾸짖었다고 하니 그 사랑이 어떠했을지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숙종의 반려묘는 충심을 보여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데, 숙종이 승하하자 슬피 울며 곡기도 마다한 채 결국 피골이 상접한 채 죽음을 맞았다고 해요. 우리나라 궁전에 고양이라니, 그것도 충묘였다니, 충견만 상상했던 저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여기에 원숭이가 얼어 죽을까 걱정해 가죽옷을 지어 주라고 했다는 성종의 이야기에는 어안이 벙벙하기도. 원숭이에게 가죽옷이라니, 쉽게 상상이 되십니까?!
당구를 취미로 삼았던 왕도 있습니다. 순종은 도쿄 소재 주식회사 닛쇼테이에 주문해 당구대를 구입했고, 창덕궁 인정전 동행각에 당구장을 마련했다고 해요. 1910년 국권 피탈의 한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한 취미이자 건강 회복을 위한 운동이었답니다. 현대의 취미를 순종과 공유하고 있었다는 실감에, 갑자기 시간의 격차가 확 줄어든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고종은 프랑스가 바친 도자기에 빠지기도 했고 판소리에 심취한 나머지 총애하는 명창에게 벼슬을 내리기도 했대요. 한문 소설을 손수 한글로 옮겨 번역서를 만든 효종과 인선왕후, 아버지를 위해 앵두나무를 심었던 문종의 이야기, 유달리 꽃을 아끼고 사랑했던 태조와 세조와 연산군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꽃이나 나무, 책과 운동, 동물 등 왕과 왕비의 취미도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 취미 생활들로 마음을 달랬을 그들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애잔한 마음도 들어요. 드라마나 딱딱한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본 것 같아 문득, 그립습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인물과사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