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어린 왕자' 하면 떠오르는 것은 어린 왕자와 여우가 나누는 대화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4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의례가 필요해.


p 95

 

어릴 때는 멋진 말이라고 생각해서 다이어리에 적어놓기도 했던 이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누군가와 4시에 만날 약속을 하면 그 4시의 약속 때문에 3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친하지 않은 사람은 물론, 가까운 사람이어도 예외는 없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그저 준비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부터 번거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차라리 아무 예고 없는 만남이 더 좋았다. 책이 가장 친한 친구였던 데비 텅 처럼,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로 뛰어들어 책을 읽는 시간이 제일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럼 약속을 하지 않으면 될 것을, 또 좋은 사람들은 만나고 싶은 욕심에 같은 일의 반복. '나는 왜 이러는가, 무슨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점차 스트레스를 쌓이게 했고, 결국 해답은 하나였다. 그런 나를 인정하는 것.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 이런 부분은 내 마음대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조금 더 편해졌던 것 같다.

 

[어린 왕자]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에 힘입어 처음 이 작품을 읽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사실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어린 왕자가 아니라 '장미'였다.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결국 어린 왕자가 떠난다고 할 때에야 그 사랑을 깨달은 장미.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해서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장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어린 왕자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장미라니, 로맨틱해!'라고 느낄 때, 나는 어린 왕자의 별에 홀로 남아있을 장미를 계속 생각했다. 어린 왕자도 장미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 사랑하는데 왜 굳이 장미를 두고 여행을 떠나야 했나. 장미는 왜 어린 왕자를 붙잡지 않았을까. 나에게 장미와 어린 왕자는 슬픈 사랑의 주인공들이자, 오히려 자신들의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안타까움의 상징이었다.

 

이번에 읽을 때는 또 다른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어른들은 자기들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때마다 자꾸자꾸 설명을 해주자니 어린애에겐 힘겨운 일이다.


p 10

 

생각의 전환이랄까. 그동안 줄곧 설명을 해주는 쪽은 엄마인 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린 그림,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의 의미 등을 이야기해주는 것은 늘 아이 쪽이었다.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 작은 머리를 총동원해 어떻게 표현할지 궁리했을 아이를 생각하니 살며시 미소가 나온다. 그래, 이런 엄마를 이해시키기 위해 네가 참 고생했겠구나. 앞으로는 아이의 설명을 듣기 전에, 먼저 오랫동안 아이가 그린 그림을 들여다봐야겠다.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를 처음 접했을 때 [어린 왕자]가 포함된 것을 보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멋지게 읽힐 이 이야기가, 나는 예전부터 제일 어려웠다. 다른 어른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그리고 나중에 아이들이 자란다면 어떻게 느낄지 제일 궁금한 작품 중 하나. 이런 순수함에 똑같이 순수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에, 약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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