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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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올직히 말하자면 일단 욕을 한 바가지는 하고 싶다!! 평소 욕을 하지도 않고 아는 욕도 얼마 안 되는데, 아는 욕 모르는 욕 있는 욕 없는 욕 다 동원하고 싶은 이 마음. 내가 이런데 하물며 우리 엘리자베트 루세 양의 참담한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보불전쟁 당시 천한 매춘부의 신분이었을지언정 프랑스 국민으로서 자부심과 자존감만큼은 살아있었던 루세. 그런 그녀를 프로이센 장교의 손으로 밀어넣은 '교양 있고 품격 높은' 사람들의 인면수심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라 마르세예즈'로 조롱하는 한 남자. 비록 속세에 통달한 그였으나, 그 순간 이 남자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구보다 도리와 정도를 아는 사람이었다.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작가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품을 잘 알고 있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정작 읽어보면 '이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었나!' 놀라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은 이 단편집에 실린 <목걸이>가 가장 잘 알려져 있을 터지만 표제작인 <비곗덩어리>를 읽고 탄성을 금할 수 없었다. 절로 박수가 나오는 작품이라고 할까. 명예와 품위를 논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자아마저 짓밟을 수 있는 파렴치한 이들의 뻔뻔스러운 면면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야기로, '라 마르세예즈'가 전달하는 결말의 전율은 가히 천재적인 것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다.

 

<두 친구> 이야기도 짧지만 강력하다. 역시 배경은 보불전쟁. 굶주림으로 허덕이던 모리소는 친구 소바주와 함께 프랑스군 초소를 통과해 낚시를 하러 갔다가 프로이센군에게 붙잡힌다. 그들이 맞이한 운명에 이변은 없었고, 모든 일은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순식간에 끝난다. 모리소와 소바주가 잡은 물고기를 '산 채로 튀겨오라'는 프로이센 장교의 명령. 프랑스의 처지를 '산 채로 튀겨지는' 생선으로 묘사한 작가의 기교가 탁월하다.

 

<목걸이>의 안타까움과 연민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주인공 마틸드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나의 마음도 함께 쿵 떨어져내렸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한 10년이라는 세월. 시간이 유수같다고 해도 절망과 괴로움으로 가득 찬 삶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처럼도 느껴졌을 일이다. 이 작품이 선사하는 반전은, 수많은 스릴러 소설의 결말을 능가한다.

 


 

 

총 세 편의 작품을 합쳐도 1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꽉 채워져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무 재미있었고, 아껴 읽고 싶었으나 역시나 한번에 휘리릭. 엄지 척할만한 수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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