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카르마 브라운 지음, 김현수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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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2018년의 앨리스와 1950년대의 넬리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완벽한 아내를 위한 레시피]. 읽는 내내 고구마를 백만 스물 둘, 백만 스물 셋은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열한 살이나 많은 남편 리처드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면서도 그의 바람을 모른 척 하며 안락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는 넬리나, 부당한 일로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남편 네이트로 인해 원하지 않는 이사를 감행한데다 이제는 임신을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앨리스. 두 사람의 처지가 다를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두꺼운 시간의 벽을 통과해도 여성의 존재를 '완벽한 주부'와 '임신'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와 가정 속에서 발버둥치는 두 사람. 실상 그녀들은 자신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누군가가 계속해서 그런 역할을 강요한다면, 그 틀 안에 갇혀버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이 가스라이팅이 아니고 뭐지.

 

넬리의 남편 리처드나 앨리스의 남편 네이트 모두 최악이었다. 그나마 아직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는 네이트가 좀 덜 최악이라고 해야 하려나. 우선 리처드는 '그 시대' 남자들이 그렇듯, 오만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아내인 넬리마저 자신의 '소유'로 여기는 사람이다. 수시로 아내를 학대하고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증거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이며, 심지어 잠자리는 강간으로 여겨질만큼 폭력적이고 강압적이다.

 

네이트는 미남에 능력 있고 앨리스를 많이 사랑하는 멋진 남자 캐릭터지만, 자신의 결정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역시나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의 결정을 앨리스도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는 유아기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할까. 결혼을 했고, 어쨌든 아기를 가질 계획이 있다면 아기 갖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아기를 낳고 주로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앨리스지 네이트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앨리스는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배란 테스트기를 선물이랍시고 내밀고, 아내의 생리 주기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남자라니.  책을 읽다 놀라움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런 리처드와 살아가는 넬리의 가장 큰 기쁨은 어머니가 남겨진 레시피를 참고로 요리하고 정원을 돌보는 일이었다. 리처드마저도 넬리의 요리 솜씨에는 톡톡히 '덕'을 보게 되는데, 이야기 중간 중간 등장하는 레시피들을 새벽에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 허기를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레시피가 들어있는 책을 이사한 집 지하실에서 발견한 앨리스. 순서대로 따라하면서 자신을 집과 네이트의 요구에 맞춰보려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러나 점점 쌓여가는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 임신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심리 상태로 결국 폭발하고 만다.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 이 폭발과 네이트와의 다툼을 통해 정신을 차린 앨리스는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실히 깨닫게 되고 이제 자신의 결정을 따를 것인지 네이트에게 촉구한다. 선택의 기회는 항상 있는 거니까.

 

이미 사회적으로 업적과 명성을 쌓아가며 살아가는 지금 시대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여성들의 '의무'라는 것에 속박당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주위 사람의 말들에 휩쓸려 원하지 않는 모습이더라도 살아낼 수밖에 없게 되는 때가 오고 말 것이다. 매일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지금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넬리의 어머니가 남겨준 레시피대로 요리하면서 매일 자신을 들여다보며 결국 자신들의 길을 찾은 두 사람. 그녀들을 위한 완벽한 레시피였다.

 

**출판사 <미디어창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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