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읽은 <검은 고양이>로 인해 고양이, 특히 검은 고양이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고양이와 마주치면 내가 빙 둘러 돌아가기도 하고, 도망치듯 뛰어가기도 하면서 혹시나 집까지 따라와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까 지레 겁을 먹었다. 그만큼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가 내게 남긴 감정은 무척 강렬한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라! 완전범죄라 자신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어른이 된 지금도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쫙 돋으면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끔 아기의 울음소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때가 있으면, 작품의 주인공이 들었던 울음소리가 혹시나 저것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인간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비열하거나 어리석은 짓을 수없이 저지른다.


p 63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에 포함된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은 표제작 <도둑맞은 편지>를 비롯해 <어셔가의 붕괴>, <붉은 죽음의 가면극>, <검은 고양이> 등 총 네 편이 실려 있다. 모두 광기, 혹은 신들린 듯 써내려갔다는 표현이 떠오르게 만드는 작품들로 볼 때 포가 선보인 작품 세계가 평범하지만은 않다고 느껴진다.

 

평생을 '때 이른 매장'에 대한 공포에 집착했다는 이야기에서, 혹시나 포 자신이 그런 범죄와 연관된 적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특히 <어셔가의 붕괴>가 전달하는 공포와 두려움은 무척 생생하다. 처음에는 화자의 친구인 로드릭 어셔의 쌍둥이 동생 매들린에 대해 '혹시 뱀파이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로드릭 어셔가 보이는 신경증과 유전병,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화자가 어셔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근친상간'으로 인한 죽음의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인다. 어쩌면 가문 대대로 내려왔을지도 모를 전통. 포는 '근친상간'으로 인한 가문의 몰락, 그에 대한 로드릭 어셔의 강박적인 공포 등을 환상적이고도 괴이한 분위기로 자아내다가 결국에는 실체적인 붕괴를 선보이며 절묘한 결말을 제시한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기묘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이다. '붉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성에 모여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고 연회를 즐기지만, 결국 그들도 그 죽음을 피하지는 못한다. 죽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체화하여 사람들이 피로 물들어 쓰러지는 장면은 가히 연극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것이 어디에 있든 아무리 죽음을 피하려고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1842년 1월 아내인 버지니아가 각혈할 뒤 발표된 것으로 '붉은 죽음'이 결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듯 하다.

 

<모르그 가의 살인>,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함께 아마추어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 등장하여 사건을 수사하는 이야기로 유명한 <도둑맞은 편지>. 현 내각의 장관이자 문제적 인물인 D가 어떤 중요한 인물에게서 탈취해 간 편지를 너무나 간단하게 되찾아오는 뒤팽의 모습을 그린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물론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 논리와 추론에 대한 뒤팽의 의견을 듣는 재미도 무척 크다.

 


 

 

마치 각기 다른 세계의 문을 하나씩 열고 들어갔다가 나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작품들. 불행한 유년시절과 그보다 더한 불행을 겪었던 포의 이야기를 알고 작품을 읽으면 어딘가 아련한 슬픔 비슷한 것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가 마음을 움켜쥐는 것 같지만, 한 번이라도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맛본 독자라면 그 중독성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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