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열전
박시백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비아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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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매체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누군가가 아주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는 기사를 다룬 적이 있다. 친일파들의 후손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반면 의로운 일을 했던 누군가의 가족들은 힘든 삶을 견뎌야 하는 사회, 여기가 대한민국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대부분의 전범들을 심판했던 독일과는 달리, 일본의 전범 심판, 그리고 친일파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문제는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가 되어 가끔 수면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때뿐. 시민들은 분노하고 침을 튀겨가며 그들을 비난하지만 또 어느 새 잠잠해져 다시 물 밑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고 만다.

 

사실 우리는 친일파로 활동한 이들이 누구인지 그 면면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기껏해야 이완용 정도일까. 일본의 식민통치가 끝난 뒤에도 처벌은 커녕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잡았던 그들. 아마도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 모두 자신들을 잊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일생을 바쳐 친일파 연구에 주춧돌을 놓았던 임종국 선생님. 뒤이어 민족문제연구소에 모인 뜻있는 연구자들이 시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2009년, 마침내 <친일인명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 지금부터 다시 수 백년의 시간이 지난들,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잊을쏘냐!!

 

마음의 각오를 하고 펼친 책이지만 처음부터 너무 강한 충격에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을 강제 병합한 직후, 일제는 황족과 친일파들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광범위하게 은사금을 살포했는데, 그 중 은사금을 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긴 한 장의 사진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양반과 유생들이 은사금을 받기 위해 두 손을 살포시 모으고 나란히 서 있는 그 모습이란! 자신들을 조선의 주춧돌이자 자존심이라 여기며 살아온 그들이, 그렇게 순식간에 자긍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꼈다. 모든 양반과 유생들이 그 자리에 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나, 조선을 떠받치고 있던 힘이란 얼마나 약한 것이었던가, 이 사진 한 장으로 통감할 수밖에 없다.

 

각계각층에서 친일파로 활동한 이들의 행적을 살피다보니 어쩌면 그들이 일본인 관리보다 더 악랄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식민지 시대에 그렇게도 출세가 하고 싶었을까. 일본에 건너가 일하다가 돌아와 순사가 되었던 노덕술. 그는 부산 지역의 항일운동을 탄압하면서 악랄한 고문을 가하기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해방 뒤에는 수도관구 경찰청 수사과장을 맡았는데,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잡아 뺨을 때렸다니, 와, 이런 ^&^^&%&%^%&^%*%*&%^!!

 

읽을수록 '이 사람도 친일파였어? 이 사람도, 이 사람도??'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특히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친일파들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같은 인물들. 1955

년에 제정된 동인문학상은 지금까지 이어져 있다고 하는데, 소올직히 이 상을 제정한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싶다. 얼른 폐지해야지, 그저 '폐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을 뿐이라니!! 노천명의 소설이 아무리 좋다 한들, 현제명이 지은 곡이 아무리 심금을 울린다 한들 그들의 친일 행적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들의 예술혼까지 더럽혀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또 태세 전환은 어찌나 빠르신지, 현제명은 해방되자 곧바로 <독립행진곡>을 작곡하며 1976년까지 서울대 음대 교수로 일했다니, 그저 할 말을 잊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 시대, 우리의 열악한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일제 식민 통치를 거치고 겨우 해방되나 싶더니 예기치 않게 찾아든 동족상잔의 비극. 그 아수라장에서 우리 사회를 뒷받침해나갈 인물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친일파들이라도 데려다 일을 시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의식 수준도 미비했고, 사회적으로 준비도 부족했다. 국민들에게도 친일파 청산보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시급했을 시절. 너덜너덜해진 우리 역사 속 한 부분을 바라보는 것 같아 침통할 따름이다.

 

책의 맨 뒷장에는 친일파들의 이름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들과 같은 이름이 실려 있을까, 괜히 조마조마. 내 앞으로 이 책을 길이길이 기억하고 남겨서 후손들에게 음이라도 같은 이름은 한 자도 짓지 못하게 하리!

 

다시 한 번, 소중한 목숨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그 후손들이 친일파보다 승승장구하는 나라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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