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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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힌 듯, 금방이라도 끅끅거리는 울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다. 마치 깊고 깊은 늪에 빠진 듯 끈적거리는 무언가에 온몸이 뒤덮여서 헤어나오려 해도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듯한 느낌. 어쩌면 그것은 '말(言)'이었다. 아불루의 예언이 네 명의 소년들 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옭아매어 그것에 묶어버렸다. 언제 어디서나 말이 나를 따라다닌다.


이케나, 너는 붉은 강에서 헤엄칠 것이나 다시는 그 강물에서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네 생명은......


p 112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한 부재 속에서 소년들은 자유를 만끽한다. 평소대로였다면 잊지 않고 걸레로 훔쳤을 책장도 제대로 청소하지 않고, 금지된 강 오미알라에서 낚시를 시작한 후 자신들을 '어부들'이라 부르며 즐거워한다. 비록 얼마 후 들켜 아버지로부터 엄한 매질을 당하지만, 평범하고 소박했던 소년들의 생활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광인 아 불루였다. 사고로 인해 미치광이가 된 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타인의 과거와 미래를 들여다보게 된 자. 그가 이켄나를 향해 말한다. '너는 어부의 손에 죽을 것이다'라고.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이켄나는 그 '어부'란 다름아닌 동생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며 점차 가족과 거리를 둔다. 언행은 거칠어지고 신경은 예민해져 작은 일에도 화를 냈으며 그 누구도 자신의 곁에 오지 못하게 했다. 마치 성경 속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상황 속에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여기에서 일의 앞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에 아불루가 예언을 하게 된 것인지, 말의 주술적인 힘에 이끌려 운명이 뒤틀려버린 것인지. 가슴 아프다는 말조차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비극 앞에서, 형들을 지붕처럼 여기고 살았던 벤의 허무함과 절망이 짙어져간다.

 

나이지리아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도 현장을 생생히 느낄 수 있을만큼 배경 묘사가 뛰어나다. 1990년대의 안정되지 않은 정치적 상황, 그로 인해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불안한 생활, 가난과 질병. 열악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매달릴 것은 종교와 미신 뿐이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이켄나는 아불루의 말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러나 아불루는 말했다. '이케나'라고. '이켄나'가 아닌, '이케나'라고.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소년의 섬세한 감성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두려움과 공포는 어쩌면 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지.

 

시적인 언어 속에서 피어난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못하겠는 이유는,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와, 떠나갔던 누군가가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죄책감이든 뭐든, 묶을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 이번에 그들을 묶는 것은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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