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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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지금의 자신으로 있게 만들었던 수많은 결정들을 떠올린다. 삶의 길목마다 기다리고 있던 선택의 순간들. 그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갔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다른 길을 선택했어도 지금의 나로 있을 수 있을까. 누구나 느끼게 되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후회. 지금까지는 크게 후회하는 일 없이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삶의 방향이 또 있으랴. 밤에 잠자리에 누워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별 걱정없이 잠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잘 살아왔다는 증거다.

 

여기 이 남자, 야마쿠라 시로는 이제 편안히 잠들 수 없다. 자신의 아들 다카시 대신 오인 유괴되어 살해당한 아이의 친구 시게루. 부모로부터 아이를 빼앗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그런 잔혹한 일을 저지른 범인은 어쩌다 유괴 대상을 착각한 것일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시게루 또한 야마쿠라 시로와 깊은 관계가 있는 아이라는 점이다. 그 동안 아이를 모른 척 해왔다는 죄책감으로 유괴범에게 돈을 전달하러 나갔던 그는, 그만 전달과정에서 정신을 잃고 결국 유괴범과의 접촉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 야마쿠라 시로의 귓가에 울리는 검은 목소리. 너도 결국 이런 결과를 원한 거 아니었어? 아이만 없으면 지금의 네 가정을 지킬 수 있어.

 

[요리코를 위해] 로 충격적인 결말을 선보였던 노리즈키 린타로의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1의 비극]은, 중요한 순간 잘못된 길을 택했던 한 남자의 숨막히는 심리 스릴러이자 치정극이라고 볼 수 있겠다. 유괴범과의 접선 과정에 실패해 결국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야마쿠라 시로에 대한 의심,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과연 용의자는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것인가에 대한 의문, 더불어 일어난 밀실 살인,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떻게 사건을 수사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 등 모든 요소가 하나의 눈덩이로 불어나 질주한다. 이 과정에서 노리즈키 린타로는 사실상 조연에 불과하고 이야기는 대부분 야마쿠라 시로의 시점에서 진행되는데,  그가 느끼는 부담감이 생생하게 드러나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마저 숨막히는 듯한 압박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작품의 결말을 알고 난 지금, 그 안타까움과 씁쓸함에 마음이 쿵 내려앉고 말았다. 결국 어른들의 잘못으로 희생된 아이. 범인의 사연도 가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한 일에 정당성이 부여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모든 것을 밝히고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애초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쨌거나 살아남았으나 언젠가는 이 모든 일을 짊어지고 가게 될 아이. 이 두 아이가 가엾을 따름이다.

 

엘러리 퀸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는 노리즈키 린타로.  이 <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는 작가가 퀸에게 바치는 오마주이자 작가의 대표 시리즈다. 아버지이자 경찰인 노리즈키 사다오와 그 아들 노리즈키 린타로가 함께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엘러리 퀸의 작품들과 상당히 비슷하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다소 뒤로 물러나 있는 듯한 이미지의 작품 속 '노리즈키 린타로'였지만 또다른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다. 특히 제목에 담긴 단서의 의미를 알게 된 지금, [2의 비극]이라는 작품의 범인이 벌써부터 무척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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