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4 - 듄의 신황제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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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시리즈의 2권 [듄의 메시아] 리뷰에서 폴 무앗딥이 '퀴사츠 해더락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는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력을 갖게 된 대가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는 없었던 폴 무앗딥. 심지어 그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것들 중에서 덜 고통스러운 것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 하기도 했다.

 

 

시리즈의 4권인 [듄의 신황제]에서는 이제 '벌레'가 되기를 선택한 레토의 고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벌레'로 변신하고 시간은 흘러 3천년. 그 동안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칭송하는 신으로서 물과 녹음이 풍성해진 아라키스를 비롯한 다른 행성들을 지배해왔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폭군'으로 불리며 복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3권인 [듄의 메시아] 에서부터 언급된 '황금의 길'을 위한 레토의 선택. 이번 편에서는 그 '황금의 길'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 있기를 기대했으나 레토가 보낸 3천여 년의 시간 역시 그 '황금의 길'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된다.

 

 

이야기의 초반에 묘사된 레토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낀 것은 당연. 몸 길이는 7미터에 지름은 2미터를 조금 넘고, 몸의 대부분에는 이랑 같은 무늬가 있으며, 얼굴은 몸 한쪽 끝에 인간의 키와 같은 높이에 자리잡고 있다. 다리와 발은 퇴화되어 지느러미처럼 보이고 몸무게는 5톤 정도. 움직일 때는 수레를 이용하거나 몸 전체를 꿈틀거리며 굴리면서 이동한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충격적으로 변화한 레토의 모습과 그를 광신적으로 추종하는 물고기 웅변대의 등장으로 초반에는 레토의 진의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저 권력과 장수에 눈이 먼 권력자의 모습이라고만 치부했을 뿐.

 

 


나는 레토 황제가 인간성의 상실과 벌레의 몸이라는 그 끔찍한 변화를 받아들인 동기가 무엇일지 자문해 보았다. 당신들은 그가 단순히 권력과 장수를 위해 그렇게 했다고 시사한다. 당신들이라면 그렇게 보잘것없는 보상을 받으려고 그런 대가를 치를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p 99

 

 

그 누구도 오직 권력과 장수만을 위해 끔찍한 모습이 되기를 선택하지는 않는다-는 익스의 대사 흐위 노리의 주장에서, 레토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음을 직감했다. 사랑하는 가니를 비롯해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홀로 정지된 시간 속에 남겨져야 하는 형벌. 그 무한하고 무시무시한 시간을 보낸 레토는, 익스 인들이 그를 매료시키라고 보낸 흐위 노리의 공감과 위로 속에서 '황금의 길'을 위한 방향으로 마침내 자신만의 종지부를 찍었다.

 


 

 

작가가 등장인물들을 너무나 담담하게 죽음으로 몰고 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었는데, 던컨 아이다호만은 골라로서 무한 재생된다. 하지만 이 부분도 작가의 캐릭터 사랑이 아니라 던컨마저 레토의 '황금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로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레토는 예지력으로 던컨이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선택하는 레토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이 차선의 고통을 선택했던 폴 무앗딥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듄의 신황제]에서도 작가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암시와 단서를 통해 이루어져 있고, 독자는 열심히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레토의 선택과 '인간성을 상실한 것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어째서 그가 '벌레'가 되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충분히 납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이 4권, 참 열심히 읽었다. 매일밤 꿈에 레토가 벌레의 모습으로 등장해 괴롭기도 했고.

 

 

이제 아라키스는 어떻게 변화할까. 다시 '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더 이상 기대할 이야기가 없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쫓아내기라도 하듯 매번 새로운 설정으로 다음 권을 기대하게 만드는 시리즈.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내심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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