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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평점 :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인생책'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인생책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푹 빠져서 현실마저 잊고 페이지를 덮는 순간을 아쉬워하게 만드는 책.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생각지도 못한 모험을 떠날 수도 있고, 실제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세계를 만날 때도 있고, 결코 떠나보낼 수 없는 사랑의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다 읽거나 페이지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놓고 책을 덮으면 우리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것이 책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마법.
가령 여기 진보 정의 서점에 들어가 책 한 권을 집어서 펴면 그 순간 특별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을 말이 메워 대지가 생겨나고 초목이 우거지고 인간이 살기 시작해 그곳에 세계가 나타난다. 다른 책을 집으면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세계는 끝을 알 수 없는 밀림처럼 증식한다.
그런데 여기 [열대]라는 책에 푹 빠져 현실속에서까지 책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사야마 쇼이치라는 작가가 썼다는 단 한 권의 작품. 이 책을 만난 사람은 모두 우연한 기회에 <열대>를 접하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없다. '모리민'도 딱 한 번 책을 본 적이 있지만 그 역시 결말까지 가지 못한 채 책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문득 잊고 있던 그 책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 그녀로부터 <열대>와 관계된 신비하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온 모리미 도미히코. 교토를 배경으로 항상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재미있게 그려내는 그의 작품들을 접한지도 벌써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그런 그가 데뷔 15주년을 기념하여 7년 동안 집필활동을 했다는 [열대]는 같은 제목의 책 <열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결말을 알아내기 위해 '학파'를 만들어 모여서 토론하고 내용을 짜맞추어 보지만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 그 와중에 모임의 일원이었던 지요씨가 '내 '열대'만이 진짜'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열대>는 과연 어떤 책인가. 처음부터 그런 책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열대] 안에는 주요 포인트가 되는 또 하나의 책이 등장한다. 바로 [천일야화]. 이야기 속의 이야기, 또 그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구조를 띠는 [천일야화]처럼 작가가 쓴 [열대]도 [열대]안의 <열대>, 또는 <열대> 안의 다른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머리가 혼미해져온다. 내가 읽는 [열대]는 정말 책이 맞을까. [열대]가 아니라 <열대>를 읽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보다도, 내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 현실인가. 설마 책 속 세상인 것은 아니겠지!!
'모리미 도미히코'의 [열대]는 마지막까지 그 방향을 종잡을 수 없다. 때로는 몽환적이고 때로는 기괴하며 때로는 엉뚱하게 진행되는 소설. 어쩌면 작가는 한권의 책에 대한 독자의 각각의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첵 속 세상에 빠져 사는 우리들 각자의 이야기를. 혼란스러움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는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읽는 내내 무척 즐거웠다는 것!!.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속절없이 빠져들게 될 작품이다.
** 출판사 <RHK :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