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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ㅣ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평점 :

까만 망토에 까만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있는 이미지로 익숙한 마녀. 때로는 익살스럽게, 때로는 으스스하게 그려지는 이 마녀라는 존재는 중세에는 대재앙이나 다름 없었다. 페스트, 백년전쟁, 가톨릭교회의 분열, 자연재해 등의 모든 고난의 책임을 물을 대상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그 중심에 마녀라는 '여성'들을 두었고, 많은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기에 이른다. 최초의 마녀재판이 열렸을 때 중세의 삽화공들은 마녀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생각해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젊고 관능적이며 유혹적인 마녀, 또는 흉측하고 사악한 노파로 마녀를 묘사한다. 1580년부터 1670년까지 마녀사냥이 확산되면서 마녀재판에 오른 여성들의 유죄판결이 증가하자 그림 속 마녀의 도상도 굳건해졌고, 大 피터르 브뤼헐의 판화가 널리 배포되면서 솥, 마법서, 빗자루, 두개골, 두꺼비 등이 마녀의 전통적인 도구로 정착했다.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혐오의 대상이었던 마녀는 민중 신앙의 일부로 치부되었고, 낭만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마녀의 이미지가 재발견된다. 팜므 파탈과 악녀에 사로잡힌 상징주의 사조의 중심에서 마녀는 귀중한 소재였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녀의 이미지는 확장되고 풍부해진다. 그리고 이제 페미니스트 운동을 거치면서 가부장제 사회가 꺼려하는 여성의 힘까지 상징하게 된 마녀. 이 마녀에 대한 작품이 풍부하게 실린 [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는, 마녀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 흥미로운 책이다.
못생기고 흉악하게 그려진 마녀부터 관능적이고 요염하게 묘사된 마녀까지, 다양한 마녀들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무래도 '키르케'라고 할까. 얼마 전 매들린 밀러의 소설 [키르케]를 읽은 참이라 그녀에게 깊이 감정 이입하고 있는 나로서는 단순히 '마녀'로만 그려진 그녀의 모습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브뤼셀의 오이노코에 화가로 추정되는 사람의 <오디세우스와 키르케>는 비교적 자주 접한 작품이지만 표지에도 나타난 프란츠 폰 슈투크의 <키르케로 분장한 틸라 뒤리외>는 그야말로 사악한 마력을 갖춘 마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림 속 키르케의 모습은 유명 배우인 틸라 되리외의 초상이기도 한데, 그녀는 불같은 성미로 유명한 희극, 무성영화 배우였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마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옛날 중세시대 때 재판에서 왜 '마법사'는 없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그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지 그 오래되고 불쾌한 역사도 한번쯤은 깊게 파악해봐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