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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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는 타인, 특히 남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상하게 여겨지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하나 있는 듯 하다. 여성이 조금만 자신의 권리 운운해도 쉽게 툭 튀어나오는 그 말. 바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그런데 하나 더 이상한 것은, 그 단어가 타인의 입을 통해 자신의 귀에 날아와 박히는 순간부터 움츠러드는 여성들도 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저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나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므로 단순한 착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판단된 그 상황이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왜 특별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는 무엇인가.

 

 

 

[82년생 김지영]에 쏟아진 다양한 시선 속에는 분명 그런 눈빛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왔는데 네가 왜 그 이야기를 꺼내?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들 중에는 남성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도 포함된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온 어머니도 '애 하나 키우면서 우는 소리는'이라고 감상평을 남기셨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애 하나 키우면서 징징대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낮에는 수업하고 저녁에는 수업 듣고, 휴일이면 지혜를 업고 몸이 바스라지도록 집안일을 했다. 세 끼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창틀이며 다용도실, 화장실 타일 사이까지 닦아 댔다. 어머니는, 어쩌면 가족들 모두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거나 돕지 않았다. 감수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우스운 것은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p 230-231

 

세상 속에서 여성이 갖는 위상이 예전보다 높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현실적인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지 않을 거라고, 그게 뭐냐고 발악을 하면서도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가끔은 그 무게에 지고 마는 때가 오는 것이다. 육아? 힘들다. 하지만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내 새끼들과 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인데 힘들 수만 있겠나. 살림? 누가 뭐라든 대충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육아와 살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사회는 얼마나 관대하고 그 과정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랜 세월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삐딱하게 나가기라도 하면 '집에서 애 제대로 안 보고 뭐했어?'라는 말까지 들어가면서. 여자들은 남자들이 밖에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회사에서 일 제대로 안 하고 뭐했어?'라는 말 같은 건 안 하지 않나. 우리에게는 누가 무엇을 맡고 있든 남자와 여자, 서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와 존중과 관대함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이 같은 여성에게.

 


 

<오로라의 밤>은 여성이 여성에게 갖는 연대감이 특히 잘 표현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 때문에 때로는 자식의 요구에마저 등을 돌려야 했던 엄마, 며느리가 아들보다 잘 나갈까봐 질투했던 시어머니, 때로는 엄마를 원망했지만 조금씩 그 마음을 이해해가는 딸. 3대의 이야기 속에는 지금 내 자신이 처한 상황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고, 동경하던 바람직한(?) 인생이 그려져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물들. 너무 어여뻐서 눈물이 나게 만든 사람들.

 

 

여성이 여성에게 잔혹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여성들에게는 다음 시대를 살아갈 또 다른 '여성'이 존재한다. 여성이 '일부' 남성이 가지고 있는 바르지 못한 시각으로 같은 여성들을 바라볼수록 여성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여성들 시각에 늘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이유다.

 


 

그저 '여성'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런 삶의 냄새 폴폴 풍기는 이야기 중 상당수가 감추어져 왔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았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이야기들이 '여자'라는 사람의 입을 빌려 나오고 있을 뿐이다. 젊음과 삶과 노년의 시간들이, 그리고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외침들이.10대부터 80대에 걸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각자가 느낀 점은 달랐겠지만,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리 높여 짓뭉개려는 사람들은, 글쎄, 뭔가 감추려는 게 있는 건가.

 

 
**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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