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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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브라질 법인에서 제작한 영업교육 가상인간 캐릭터 '삼성 샘(Samsung Sam)'. 샘은 아트 프로덕션인 '라이트팜'이 제일기획과 협업해 만든 3G CG 캐릭터다. 처음에는 광고용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님에도 대중의 이목을 끌었고, 동서양의 외형적 특징이 적절히 어우러진 이질적인 외모 덕분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미 다수의 샘 코스프레 영상이 인기를 끌 정도. 샘이 주목받으면서 재조명된 또 하나의 가상 인간은 바로 LG 전자의 '김래아'다. 나도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는 진짜 사람인 줄 알았었는데, 그는 LG 전자가 올해 1월 CES 2021에서 선보인 23살 여성 음악가 캐릭터다. 김래아의 가장 독특한 점은 SNS를 통해 실제 팬들과 소통하는 '가상인간'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1만 1000명의 팔로워가 있고 게시글도 80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을 알게 되면서 생각나는 것은 역시 클라라다. 태양 빛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클라라. 클라라는 비록 에이에프지만 인간의 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인간이라도 섬세한 성향이 아니라면 알아채지 못할 미묘한 순간 속에서 찰나의 감정을 '느낀다'. 그것은 이를테면, 누구로부터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에 대한 슬픔 같은 것, 그리고 행복과 고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 같은 것. 그런 클라라를 눈여겨 본 매니저는, 클라라가 유독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결국 조시와 만날 수 있게 배려해준다.

 

 

몸이 좋지 않은 조시. 금방이라도 곧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은 조시를 지켜보던 클라라는, 태양이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고 죽은 줄만 알았던 거지 아저씨와 그의 개를 다시 소생시켰다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린다. 조시를 위해 태양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클라라. 태양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조시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는 클라라의,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찬란한 여정이 시작된다!

 


 

언젠가는 우리도 클라라와 같은 에이에프를 눈 앞에서 맞닥뜨릴 때가 올 것이다. 심지어 어쩌면, 그 에이에프가 잃어버린 우리의 소중한 누군가의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동과 말투, 성격과 얼굴이 똑같다고 해서 그 에이에프가 소중한 이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클라라가 보통 사람들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녀를 정말 '사람'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모든 것이 같다고 해도 단 하나 같지 않은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그것을 영혼이라 부르든, 그 무엇이라 부르든, 어떤 존재를 그 존재로 있을 수 있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있다.

 

해가 조시에게 특별한 도움을 주기만 한다면 더 내줄 수도, 전부 다 내놓을 수도 있어요. 아시겠지만 지난번 여기 왔던 때 이후로 조시를 구할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만약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그 방법이 잘 안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해가 다시 한번 관대함을 보여 주시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p 396-39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클라라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아이는 대체 누구인가, 곱씹어보게 된다. 에이에프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태양을 향해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는 클라라의 모습은, 어쩌면 먼 미래에 인간과 에이에프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해질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니라고,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도리질을 치면서도, 클라라의 순수하고 맹목적인 기도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생각. 그래서 더욱, 결말 부분에서 마음이 아려왔다. 클라라는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과연 이해할까.

 

 

<가즈오 이시구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택한 [클라라와 태양]. 2021년에 출간된 최신작으로 [남아 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받았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비교적 문체도 가볍고 술술 읽히지만, 작가가 툭 던져놓는 여운의 묵직함은 여전하다. 에이에프가 등장해서 어쩌면 내 취향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보물 발굴!!

 

 

[녹턴]과 [클라라의 태양] 중 무엇을 읽을까 고민했는데, [녹턴]이 참 좋았다는 추천을 받아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 마지막 한 권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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