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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색의 독 ㅣ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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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5월
평점 :

오래 전 [살인마 잭의 고백]을 읽었을 때는 '엥?'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렇게 시치리 월드에 푹 빠져 허우적댈 줄 몰랐다. 충격적인 것은 결혼 전 책장을 정리하면서 그 책을 나눔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는 것! 부랴부랴 인터넷 중고서점을 뒤져서 [살인마 잭의 고백]까지 완비! [일곱 색의 독]의 주인공은 시치리 월드의 또 다른 히어로, 남자들의 거짓말은 틀림없이 잡아내면서도 여자들의 거짓말에는 여지없이 넘어가버리는 '얼굴값 못하는' 이누카이 하야토다. 각기 다른 빛깔을 띠는 인간의 악의를 다룬 연작 미스터리 단편집!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증오는 품을 수 있죠."
"이건 제 지론인데, 세상에는 완전히 착한 사람도, 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습니다. 속이는 자와 속은 자만 있을 뿐입니다."
당연히 이 사람이 범인이다!-생각하고 의기양양 읽어내려갔지만, 역시나 작가가 쳐놓은 덫에 또 한 번 걸리고 만 나라는 독자. 사실 그 동안 장편만 읽어왔던 터라 이번 작품은 단편이라길래 조금 미심쩍었는데 작가는 첫 이야기인 <붉은 물>에서부터 그 의심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반전도 반전이지만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에 무척 마음 아팠던 작품. 자신 또한 악마로 전락해서 곱게 죽지는 못할 거라 읊조리는 범인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너희 나이 때는 아직 모를 테지만 평범하게 산다는 것도 나름대로 힘들고 대단한 일이란다. 게다가 평범하기에 오히려 더 수많은 사람과 희노애락을 나눌 수 있지.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밤에 안심하고 푹 잘 수 있다.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범죄자는 그렇지 못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며 불안해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지지. 그게 갱생하지 못 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형벌이란다.
<검은 비둘기>와 <녹색 정원의 주인>에서는 소년범죄에 대해 다룬다. 아이는 자라고 앞으로 이런저런 인연들을 맺을 것이다. 옆지기와 대화를 나누면서 만약 둘 중 하나의 상황에 처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나을까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답은 내지 못했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상상이라도 하고 싶을까. 하지만 소년범죄를 다룬 작품들을 읽으면서 각오를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누군가를 상처입힌다면, 아이로부터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빼앗지는 말자는 각오. 사과하고,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를 부모라는 이름으로 박탈해서 아이의 다가올 시간을 더 괴롭게 만들지는 말자는 다짐.
기괴한 호러물을 연상시키는 <노란 리본>, 결국 편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던 <보라색 헌화>, 애정을 기반으로 사람을 속이고 해하려 하는 잔인한 인간의 이면을 그린 <하얀 원고>와 <푸른 물고기>까지 다채로운 빛깔을 내뿜는 악의들. 인간의 악의는 타인을 상처입히지만, 어떤 색을 가지든 결국 치명적인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번에는 어떤 반전이 등장할까 기대하면서 읽는 맛이 쏠쏠했던 작품집. 그래도 어쩐지 이누카이 하야토의 진면목을 추웅분히 맛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라 어서 빨리 장편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