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작품에서 '복제인간'과 관련된 내용을 접하다보니 어쩌면 이미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그런 존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생긴다.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문제 때문에 쉬쉬하고 있을 뿐,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어두고 그 '사용처'까지 설정해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신 아이를 낳게 하거나 강제로 장기를 적출하는 등의 영상으로 충격을 선사했던 영화 <아일랜드>부터, 최근 읽게 된 먹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어두는 소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까지 어느 작품에서나 복제인간의 운명은 평화롭지 못한 것이었다.

 

 

왜? 왜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이 그토록 예민한 문제가 된 걸까. 당연히, 그 과정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복제품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도구'로 전락된다는 것은, 언젠가는 복제품이 아닌 인간 또한 '도구'로 사용되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는 만연해 있지만, 나와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어떤 존재에게 목숨과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여기에 복제인간을 '근원자'의 대체물로 여길 것인지 독립된 한 개체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늘 존재해왔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가즈오 이시구로>시리즈의 작품 중 두 번째로 읽은 [나를 보내지 마]는, 이미 너무나 유명해서 소재 정도는 알려져 있듯이 '복제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캐시가 자신과 친구들이 생활했던 '헤일셤'에서의 추억을 더듬어가며 이루고자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던 희망에 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마음을 깊이 나눴던 친구 루스와 토미와의 관계가 주를 이루면서 작품은 캐시의 과거를 끈질기게 독자에게 내보인다. 헤일셤에서 어떤 추억들을 쌓았는지, 친구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등의 일화를 서술하면서 언뜻언뜻 비치는 기증과 클론, 간병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그들의 운명을 짐작하게 한다.

 

 

캐시의 현재보다 과거를 다루는 것에 페이지의 대부분이 할애된 것이, 계속 궁금했다. 작가는 왜 이렇게 줄곧 그들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그들이 음악을 듣고 느낄 수 있다는 것, 무언가를 생각하고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어떤 일에 대해 분노하거나 토론하거나 사고하고 있다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가. '복제인간은 '근원자'들과는 다른 존재다'라고 듣는 것보다 이렇게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직접적이었다. 복제인간이라도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어, 여기 봐, 그들은 근원자들과는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꿈꾸며 이렇게 숨쉬고 살아있잖아. 그런 그들에게 기증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작가는 독자 스스로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건 안타까운 일이야, 캐시

p 482

 

 

'안타까운 일'로 치부되기에 캐시와 루스, 토미를 비롯한 복제인간들의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비록 목적을 위해 창조되어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었던 생명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숨쉬고 사랑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담담한 문체 속에서 빛을 발하는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 그 담담한 문체가 더 묵직한 슬픔과 울컥함을 끌어낸다.

 


 

원제인 <Never Let Me go]는 주디 브리지워터의 노래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의역하자면 '내 곁에 있어 줘'가 된다. 우리말 제목에서는 캐시의 입장에서 서 본다는 생각으로 '나를 보내지 마'라고 정했다는데, 해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헤일셤에서의 생활에서 저 바깥 세상으로 자신을 내몰지 말라는 울부짖음으로 다가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