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리 dele 1
혼다 다카요시 지음, 박정임 옮김 / 살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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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내가 사용하던 메일계정과 그 안의 정보들, 스마트폰 안의 연락처들과 이런저런 데이터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비밀번호는 옆지기가 알고 있으니 알아서 정리해줄 것 같기도 한데, 혹시나 그 안에 옆지기나 다른 가족들이 보면 안되는 내용들이 있었던가. 현실 속에서 정리하는 일이 서툰 나는, 인터넷 세상 속 데이터들을 정리하는 데도 서툴러서 이런 저런 내용들이 섞여 있기는 한데 (그래도 나같은 사람들이 그렇듯, 무엇이 어디 있는지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 아직까지 타인이 봐서 크게 곤란한 내용들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dele.com(디리 닷 컴)'에서는 의뢰인들이 부탁한 데이터를, 의뢰인 사후에 삭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민낯. 휠체어에 앉아 컴퓨터를 이용해 의뢰받은 일을 냉정하게 처리하는 사카가미 케이시와 그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마시바 유타로. 대체로 의뢰인의 요청을 무난하게 처리하는 편이지만 타인의 사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타로에 의해 사업의 철칙을 깨고 몇 건의 데이터를 열람하기도 한다. 늘 유타로가 케이시에게 애걸복걸하는 형국이기는 하지만, 어느 때는 케이시가 못이기는 척 유타로의 부탁을 받아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경찰이나 탐정도 아닌 그저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새 사망한 사람이 생전 전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거나 의문을 해결하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내가 회사를 만든다면 분명 정반대의 일을 할 거 같아.

정반대의 일?

당신이 죽은 후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을 내게 맡겨달라고. 난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온 힘을 다해 지키겠다고.

p302

 

현실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디리1]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현재로서는 체험해볼 수 없는 죽음 뒤의 모습 같은 것. 남아 있는 마음 같은 것들. '디리 닷 컴'에 의뢰한 사람들의 사연들을 통해 나는 무엇을 '남길 지' 생각해본다. 죽은 뒤 삭제할만한 것은 남기고 싶지 않다. 전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어떻게든 전하고, 미련 없이 상쾌하게 떠나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남기고 싶은 것을 남기겠다.


 

개인적으로 표지가 너무 아쉽다. 음침하고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는 표지 때문에 굉장히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을 상상했는데, 담긴 내용들은 상상 이상으로 따스하고 애틋하다. 으헝. 좋은 작품이 이대로 묻힐까봐 걱정이 된다.

 

**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출판사 <살림>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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