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짓의 봄 ㅣ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평점 :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봄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한동안 감성세포가 다 말라가는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던 듯, 다시 봄이 돌아오니 풀린 계절만큼이나 마음도 말랑말랑 해져서 나의 기분을 나조차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기분. 혹은 내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는 듯한 기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계절이 바로 봄이다. 혼자 있고 싶기도, 혼자 있고 싶지 않기도 하는 그런 계절. 행복하면서도 슬픈 시기. 봄에는 특별한 마력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들은 어떤 마력에 이끌렸을까. 기억의 봉인이 풀리고 되살아난 이미지에 사로잡혀 소녀를 감금하고, 생전 해보지 않았던 친절을 베풀려다 경찰에 붙들리고, 순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한다. 약점을 잡혔다고 생각한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천재성에 이끌려 자신을 내던지며, 그로 인한 상처로 또 다른 누군가는 괴로워한다. 그리고, 과거의 상흔을 지워내지 못한 채 여전히 기억에 사로잡힌 한 사람.
마력에 사로잡힌 이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전직 형사 '가노 라이타'다. 지금은 가미쿠라 파출소의 순경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무리한 심문으로 피의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과거를 여전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런 그를 그저 동네 순경이라 무시하고 얕잡아본 상대는 여지없이 그의 노련한 기술에 넘어가 결국 죄가 밝혀지고 만다. 범죄를 저지른 인물들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라 가끔은 그가 범인을 알아보지 못하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가노 라이타에게 범인들의 '서사'는 적용되지 않는다. 어떤 사연이 있든 범인은 범인이므로.
등장인물과 시놉시스를 비롯한 작품의 전체적인 설정과 플롯을 담당하는 하기노 에이, 집필을 담당하는 아유카와 소가 팀을 이뤄 후루타 덴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콤비 작가 유닛. 그들은 2014년 [여왕은 돌아오지 않는다]로 제 1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반드시 다섯 번 속게 된다!'라는 홍보문구로 출간된 [거짓의 봄]은, 작품 초입부터 사건의 범인을 드러내며 전개되는 '도치 서술 추리' 다. 범인과 가노 형사의 심리 싸움과 두뇌 게임이 독자로 하여금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기도,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봄'이라는 계절에 걸맞게, 다섯 편의 이야기 모두 인간의 섬세한 내면을 묘사해내면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선사한다. 그 안에는 아름답게 포장된 더러운 욕정도, 인간의 선함과 악함, 그리고 나약함이 포함되어 있다. 읽으면서 자꾸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아 쉬엄쉬엄 읽어내려야 했던 작품. 이 봄, 마력에 사로잡힌 이들을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던 가노 라이타. 과연 그를 구원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후속편으로 [아침과 저녁의 범죄]가 일본에서 연재되고 있다니 다음 작품에서는 그도 부디 과거의 마력에서 벗어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