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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충동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2월
평점 :

덴조학교에서 주3일 스쿨 카운셀러로 근무하는 오쿠누키 지하야에게 노즈 아키나리라는 소년이 '순수한' 살인 충동을 고백해온다. 교내에서 일어난 염소 상해 사건도 자신이 한 짓이며, '죽여 마땅한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키나리. 그는 이성을 잃은 무차별 살인마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고 담담하게 꿰뚫고 있는 이상적인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마침 지하야가 사는 곳 근처에 16년 전 잔인한 범행을 저지른 이리이치 가나메가 터를 잡는다. 절대로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민들과, 대학에서 '포용과 공생에 이르는 심리'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지하야. 과연 진정한 '받아들임'이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주변 어른들과 친구, 반 아이들이 최대한 따뜻이 받아주는 것. 저는 그것이 진정한 반성과 갱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이론적으로는 지하야의 의견에 동의했다. 동의했었다. 어떤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가 정해진 형량을 다 채웠고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면, 두 번째 기회를 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지하야의 은사인 데라카네 교수가 자신의 책 [이단의 꽃]에서 던진 질문에 나는 역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받아들인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동을 살해한 사람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과연 그에게 베이비시터를 맡길 수 있을까요?'. 이 문장을 본 순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럴 수 없다'는 대답이 올라온다. 소중한 아이들을 그런 사람에게 맡긴다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길하게 여겨질 정도. 결국 지하야가 원하는 길은 이렇게나 힘들고 이상론적인 이야기로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상하게도 지하야는 아키나리와 이리이치에게 '필사적'이다. 어떻게든 소년을 도와주고 싶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하며, 다른 주민들은 모두 두려워하는 데 반해 지하야만큼은 이리이치를 향한 태도 또한 긍정적이었다. 왜 이리 한 길만 고집하는가. 어떤 믿음을 근거로 사회가 이리이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밖에. 지하야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이리이치와 가나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또 다른 이웃과 사회를 받아들인다는 것, 언젠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남편 노리후미를 받아들인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지하야가 말하는 '하얀 충동'의 정체를 깨닫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버거움에 대해 생각한다. 혹은 그 자부심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나 많은 약속과 인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은가. 그 하얀색이 유지되는 사람과 더럽혀지는 사람의 차이는, 마지막까지도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는 또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닐런지.
작품을 읽은 지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마음 속이 정리되지 않는다. 읽는 내내 거센 파도처럼 일렁였던 가슴에 남은 것은 그저 먹먹함. 마지막으로 머리에 남은 의문은 '우리 사회가 떠안은 악'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존재'가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였다. 지하야가 애초에 기록으로 남긴 '고찰은 끝났다. 나는 이제 그저 기도할 뿐이다'라는 문장이 아키나리를 향한 것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의 나를 향한, 간절한 기도.
이 작가님,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시나. 리뷰가 의미가 없다. 그저 추천할 뿐. 최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