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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루몽 1 - 낙화의 연緣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0년 12월
평점 :

'조선 최고의 판타지 소설'이라는 문구에 혹! 해서 읽기 시작한 [옥루몽]. 저자는 남영로라는 인물로 조선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의 5대손이며 그림에 능하여 [전고대방]이라는 조선 후기 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여러 차례 과거에 응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부패한 과거제도에 환멸을 느껴 벼슬길을 단념했다. 화곡에 은거하면서 '옥련자'라는 필명으로 지은 것이 바로 이 [옥루몽]이다.
여성들의 걸크러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통쾌한 이야기를 상상하며 펼친 1장. 그러나 한자도 많이 나오고 생각보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잘 익혀지지 않아 초반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옥황상제가 있는 백옥경의 열두 개의 누관 중 으뜸인 백옥루. 보수가 끝난 후 열린 낙성연에서 취흥을 띤 문창성군과 제방옥녀, 제천선녀, 천요성, 홍란성, 도화성이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읊는다. 제천선녀가 꺾어온 연꽃 한 송이와 문창성군의 시. 부처님이 시를 보시고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우자 글자들이 탑 위로 떨어져 스무 개의 명주알로 변했다. 연꽃과 명주알로 맺어진 인연들.
한편 남쪽에 있는 명산 하나. 한 도사가 지나다가 3백년이 지나지 않아 특별한 기남자를 낳아서 맑고 밝은 땅의 기운에 응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기고, 과연 자식이 없어 안타까웠던 양현과 허씨에게 아들이 하나 태어난다. 기이하고 신비한 꿈을 꾸고 낳게 된 사내아이 양창곡은 관옥처럼 아름다운 모습과 빼어난 재질, 준수한 풍모를 갖추게 된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열여섯이 된 그는 새 천자가 뛰어난 인재를 구한다는 말에 길을 떠난다. 도중에 만난 항주 최고 기녀 강남홍을 만나 서로 정을 나누지만, 양창곡이 과거 시험에 응하기도 전에 세도가의 계략에 빠진 강남홍은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강남홍이 현숙한 배필로서 권한 윤소저의 도움으로 다행히 목숨을 구한 강남홍. 그러나 양창곡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강남홍이 틀림없이 세상을 떠난 줄로만 알고 있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하여 윤소저, 황소저, 벽성선 세 여인과 차례로 인연을 맺은 양창곡은 오랑캐를 정벌하러 전장으로 떠나고 짐작조차 못한 만남을 갖게 되는데!!
1권에만 등장하는 여인들만 해도 총 다섯 명이다. 강남홍은 노래와 춤, 문장이 모두 뛰어나며 강물에 몸을 던졌다가 살아난 이후 만난 도사에게 배운 무예는 당해낼 자가 없을 정도. '홍혼탈'이라는 이름으로 양창곡의 옆에서 활약한다. 강남홍이 배필로 천거한 윤소저는 이야기 중 비중은 조금 작지만 신중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조선의 현숙한 여인이라면 이렇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미지. 양창곡이 잠시 귀향을 갔다 만난 벽성선은 여러 악기 연주에 뛰어나며 선한 심성을 가진 한편 강직한 성정의 소유자다. 양창곡이 벼슬에 올라 황의병의 압박에 못이겨 맞이한 황소저는 질투심이 많아 벽성선을 해하려는 인물로 등장한다. 양창곡이 인연을 맺은 여인들 중 가장 밉상이라고 할까. 일지련은 양창곡이 속한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강남홍을 만나 그녀의 빼어난 기상과 품성에 반한 인물이다.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의 이미지가 강하며, 쾌활하고 밝은 인물.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 설켜 빚어내는 화려하고 액션 가득한 이야기.
판타지라 하여 조선의 판타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궁금했는데 마치 중국의 무협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강남홍이 너무 완벽한 인물로 등장해서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판타지'라는 장르 안에서 읽다보면 크게 신경쓰이는 범위는 아닐 듯. 내가 궁금했던 것은 아무래도 양창곡의 마음. 강남홍이 윤소저를 추천하는 것도 어리둥절했는데, 귀향을 가더니 갑자기 벽성선에게도 마음을 여네??!! 벽성선의 이미지가 아직은 모호하여 강남홍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서 양창곡이 마음을 빼앗긴 것일까? 요래저래 남녀의 마음의 행방이 궁금타!!
고전소설이라 그런지 시로 마음을 전하는 장면도 풍미가 있고, 등장인물들이 악기를 연주하면 그 선율이 궁금해진다. 요즘 시대소설이 자꾸 끌리는 것이,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아서인가!! 어서어서 궁금한 2권으로 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