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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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 캠퍼스가 있던 자리를 복합상업지구로 개발하기 위해 작업에 착수한 회사가 비밀 묘지를 발견했다. 니클 캠퍼스 북쪽, 낡은 작업장과 학교 쓰레기장 사이에 있었던 비밀 묘지.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풀이 자란 그 곳, 예전에 이 학교가 동네 사람들에게 우유를 팔던 낙농장이었을 때 소가 풀을 뜯던 이 곳에서 발견된 시체들은 얼마 후 니클의 학생들이었던 것으로 판명된다. 니클 아카데미의 소년들이 모두 알고 있던, 부트 힐이라고 불렸던 이 묘지에서 금이 가거나 구멍이 뚫린 두개골, 대형 산탄이 잔뜩 박힌 갈비뼈 등이 발견되면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고 결국 그 곳에 묻혀있던 수십 여구의 뼈들이 발굴된다.

 

전국 매체들이 이 이야기를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진 감화원의 실체. 이미 3년 전에 문을 닫았지만 최근에 이 곳 출신들 중 일부가 인터넷을 통해 연락을 취하면서 지원 단체를 만들었다. 각자가 알고 있던 추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맞춰지고, 그 조각들이 모여 어두운 과거를 불러일으킨다. 그들을 지켜보는 인물들 중에 엘우드 커티스가 있었다. 뉴욕 시에 거주하는 니클의 소년 중 하나였던 사람. 니클의 비밀 묘지가 발견되면서 숨겨왔던 그의 과거도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며, 이제 자신도 목소리를 낼 때가 왔음을 절감한다.

 

엘우드는 흑인 소년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틴 루서 킹의 음반을 닳도록 들으면서, 언젠가는 할머니 해리엇이 일하는 리치먼드 호텔에 유색인종 손님이 당당히 현관으로 들어오길 꿈꾼다. 〈라이프〉지에 실린 시위대의 모습을 보고 감격하고, 인권 운동에 열심인 힐 선생님의 말 하나하나에 귀 기울인다. 잘못된 일은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믿는 엘우드는 그렇게 세상의 부조리에 맞설 용기와 의지를 다진다.때는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기였고, 이를 타파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공격받았고 사회적 약자에 속했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하기에 따라 어떤 미래든 꿈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날이 있기 전까지는. 학교 선생님이 소개해준 대학으로 청강을 들으러 가던 날, 자동차 절도범으로 몰린 엘우드는 니클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도 엘우드의 순진한 믿음은 계속됐다. 행실만 바르게 한다면 곧 나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홀로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니클은 그런 엘우드의 믿음을 잔혹하게 배신한다.

 

화장실에서 한 아이가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려 했으나 엘우드에게 돌아온 것은 가혹한 채찍질이었다. 면회 온 할머니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은 엘우드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현실. 감화원의 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인종차별은 계속되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전혀 받을 수 없었다. 학생들을 향한 폭행은 일상이었고, 끌려나간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감화원에 배정된 물품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조차 가볍게 느껴지는,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폭력 앞에서도 엘우드의 확고한 의지는 무너지지 않는다. 급기야 니클 학생들 누구도 하지 않았을 생각에 다다른 그는, 엘우드의 의지에 감화된 터너와 함께 일생일대 도박을 감행한다.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니클에 들어오기 전에도, 들어와서도, 나간 뒤에도 어찌할 수 없이 벼랑 끝에 내몰려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 때로는 죄를 지어 니클에 왔고, 죄를 짓지 않아도 왔다. 본래의 목적 대신 아이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끝내는 그 미래까지 앗아가버린 감화원. 이것은 마치 아우슈비츠가 다시 재건된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힘의 불균형'이다. 거대하게는 흑백의 인종차별로, 지역적으로는 니클의 감화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어떻게 제압하고 모욕하는지,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만약 이 작품이 그런 모습을 독자들의 눈 앞에 들이대는 것으로 끝났다면 '2020 퓰리처상'을 수상하지 못했겠지만, 작가는 그런 힘의 불균형을 뛰어넘는 올곧은 한 소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목숨보다 소중한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전히 온 세계에서 자행되는,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수많은 폭력과 죽음들.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 하나가 그런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하나하나의 나무가 되어가기를, 나 또한 그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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