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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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1516년, 토머스 모어가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기 위해 라틴어로 써서 출간한 허구적인 문학 작품이다.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한 재미있으면서도 유익한 대단히 훌륭한 소책자]로, 유토피아라는 상상 속 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과 관습들을 설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스어에서 '아니다, 없다'를 뜻하는 우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를 결합한 명칭이고, '-이아'는 장소를 표현할 때 흔히 사용되는 라틴어 접미어로 결국 '유토피아'라는 제목 자체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500여년 전 , 절대왕정과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시대 이상적인 공화국에 대해 이야기한 토머스 모어. 그가 제시한 이상국가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유토피아]는 1권과 2권으로 나뉘어 있다. 1권에서는 토머스 모어의 절친한 벗인 에라스무스의 소개로 알게 된 페터 힐레스에 의해 우연히 만난 라파엘 히틀로다이오-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니는 자, 라는 의미의 이름-와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라파엘은 절도범을 무조건 사형시키는 법에 대해 그 처벌이 지나칠 뿐더러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이론을 펼친다. 누구나 다 먹고살 방도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으며 그런 방법을 따라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문제다-라고 말했다는 평신도와의 일화를 통해, 수컷 벌들처럼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면서 남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귀족들을 비판하고, 그에 반해 열심히 노동하는데도 불구하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농민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해 운을 띄운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영국 사회는 절대왕정의 시기로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다. 절대 군주를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는 신분 간의 차별이 엄격했고, 귀족들이 정치권력을 독점했으며, 경제생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심해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시간까지 통제할 정도였다. 게다가 15세기 말부터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의 발달로 양모 값이 폭등하자 지주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농경지와 공유지를 목장과 목초지로 만들었던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지주들은 부를 축적한 반면, 농민들은 대규모로 몰락하여 경작지를 잃고 도시로 내쫓겨 임금노동자가 되는 형편이었다.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 속에서 토머스 모어는 라파엘의 입을 빌려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범죄자가 나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2권에서는 그런 라파엘이 다녀왔으나 정확한 위치를 기술하기는 어려운 '유토피아' 섬에 대한 이야기를 주를 이룬다. 유토피아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분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는 집도 10년마다 추첨으로 새로 정한다. 이른바 공공주택. 농업이 기본 생업으로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 해야 하는 일로 정해져 있고, 대부분 아이는 부모의 직업을 배워 가업을 잇지만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다면 그 직업을 가업으로 하는 가정에 양자로 입양되는 절차를 거치기도 한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어 오전과 오후로 구분해서 오직 6시간만 일하며 점심을 먹은 후에는 휴식 시간도 보낼 수 있다. 노동 시간 외에는 주로 책을 읽거나 공공강좌를 듣기도 하는데 유토피아에서는 주사위로 하는 도박이나 오락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오히려 악덕과 미덕이 싸우는 전쟁놀이 등을 통해 유익함을 추구한다.

 

식사는 해당지역 관청에서 공공으로 해결하고, 나이든 사람들의 연륜과 지혜를 소중히 하며 생산물은 공평하게 분배된다. 그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노예를 결박하거나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화려하게 치장할 때만 금과 은을 사용하며 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 사회에서 살아가던 토머스 모어가 '존엄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병이 불치인 경우 권고를 받고 수긍한 환자들은 스스로 먹는 것을 끊고 굶어서 죽거나, 마취 상태에서 죽음의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난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어쩌면 자살을 죄악이라 명시하는 계명에 위배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외의 원인으로 스스로 생을 버리는 사람의 시신은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보아 자살을 방조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토머스 모어가 이상적인 나라라고 제시한 유토피아이기 때문에 여기에 제시된 가부장적 사회 모습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또한 혼인하기 전에 각각의 성별들 앞에서 옷을 완전히 벗고 알몸이 되어 검사(?)를 받는다는 설정은 이상함을 넘어 뜨악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유토피아 사람들은 지능이 모자란 사람들을 좋아하여 그들이 모자라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기술된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 너무나 엄숙하여 그들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가 모자란 사람들을 너그럽고 인자하게 보살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니, 대체 어떤 논리 속에 이런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했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언급한 기본소득, 공공주택, 6시간 노동, 경제적 평등 같은 사상은 후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으로 연결되었으며, 지금도 활발히 논의될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신적이라고 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시한 최상의 공화국을 하나의 실제 모델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혀 놀라웠다. 나에게는 어딘가 로봇이나 안드로이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유토피아 시민들이었지만 현재까지 논의되는 이상국가의 틀을 이미 500년 전에 제시한 점에서는 굉장하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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