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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병으로 엄마를 잃고 열살 무렵에는 뺑소니 사고로 아빠마저 잃은 사키코. 집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마을이었기에 범인이 금방 잡힐 줄 알았지만, 범인을 찾는다는 것은 이웃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답답하고 고립된 마을에서 벗어나 도쿄 외곽으로 시집을 간 고모 집에 얹혀살았지만 그 곳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는 못하고, 결국 숙식이 제공되는 직원식당에서 일하며 야간 고등학교에 다닌다.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으로 마음 속 구멍을 메꾸려고 하는 그녀 앞에, 역시 비극적인 가족사를 지닌 다다토키가 나타난다. 서로의 사정 때문이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형 제약회사에 취직하게 된 다다토키와 결혼한 사키코는, 이제야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해질 줄 알았다.
다다토키가 살해당했다. 그것도 사기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이미 반년 전에 정리해고를 당했지만, 유산으로 침울해있던 사키코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생계를 책임져왔던 다다토키. 사키코 모르게 임대한 아파트에서 불법회사를 세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고, 그 피해자 중 하나인 구보카와치 히데오에 의해 추락사했다. 세상은 오직 다다토키가 한 때 저질렀던 범죄와 그가 사기를 친 전력에만 관심을 가질 뿐, 용의자였으나 무죄 혐의로 풀린 히데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키코는 정체를 감추고 그와의 결혼을 감행했다. 오직 히데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성모]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아키요시 리카코의 신간 [작열]은 살해당한 남편의 복수를 위해 그 범인과 결혼한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속마음을 숨긴 채 그와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연기해야만 하는 사키코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 몸서리가 처진다. 분명 그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 히데오의 행적을 추적하는 사키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범인일 리 없다는 생각이 그녀를 붙잡는다. 심지어 그에게 이성적으로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만다. 그 와중에 사키코가 누구인 지 알아챈 듯한 히데오의 눈빛. 그들의 위태로운 결혼생활은 지속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너무 억지스러운 상황을 연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가슴 아픈 결말에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일렁인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자신에게 이런 행복이 가능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히데오. 엇갈려버린 운명에,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 출판사 <마시멜로>로부터 가제본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