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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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 족 창조 신화에서 현세를 가리키는 ‘다섯 번째 세상’이 대홍수와 전쟁 때문에 무너진 뒤 북미 남서 지역의 보호구역만이 거의 유일하게 남은 세계, '여섯 번째 세상'. 그 세상에서 매기 호스키는 괴물 사냥꾼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녀와 함께 하던 스승이자 동료인 네이즈가니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버림받은 지 수 개월. 자신의 트레일러에서 칩거하며 괴로워하던 매기는 괴물에게 납치당한 소녀를 구해달라는 의뢰에 루카추카이에 와 있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괴물의 정체. 괴물을 처치하고 자른 목을 들고 쎄보니토 번화가에 사는 최고의 괴물 전문가 타흐 영감을 찾은 자리에서 그의 손자인 카이를 만난다. 괴물을 만든 배후에 마법사가 있을 것이라 짐작한 타흐 영감은 '대 치유술사'의 길을 걷고 있는 카이를 매기의 파트너로 적극 추천하고, 매기는 괴물의 잘린 머리를 보고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툭 던진 카이의 한 마디에 함께 길을 떠난다.

 

기후 이변인 '큰물'이 지나가고 에너지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서서히 멸망하고 있는 북미 대륙. 장벽으로 바깥 세계와 단절된 나바호 족의 땅 디네타에 살아남은 것은 스스로를 '디네'라 부르는 토착민 만이 아니었다. 전설 속에서만 숨 쉬는 줄 알았던 신과 괴물, 신비한 능력을 지닌 영웅의 등장. 매기 또한 할머니와 살아가던 중 마법사 일당의 습격을 받고 부족의 혈통을 통해 전해지는 '클랜 파워'에 눈을 떴다. 그녀의 모계는 호나가하니, 매우 빠르게 돌아다니는 능력. 부계는 카하나아니, 살아 있는 화살로 불리는 그 능력은 누군가를 '기가 막히게' 잘 죽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이자, 위기 상황에서 그녀를 살아남게 해주는 구원 같은 힘이었다. 네이즈가니는 그녀의 본능 속에 잠재되어 있는 카하나아니로 인한 피에 대한 갈망을 질병이자 악으로 규정하며 매기를 떠났다. 그렇다면 자신은 괴물인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그녀를 눈부신 미남이자 '대 치유술사' 애송이인 줄 알았던 카이가 위로한다.

 

아칸소 주 콘웨이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후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한 작가 리베카 로언호스. 주민 대다수가 백인이었던 지역에서 성장하며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을 느꼈던 그녀를 지탱해준 것은 SF와 판타지였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에 강한 애정을 간직한 채 나바호 자치국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그녀는 그 때문인지 작품 여기저기에 그 애정을 드러내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역사와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호소하기도 하는 듯 하다. 2018년 [진정한 인디언 체험으로 안내합니다]로 휴고 상, 네뷸러 상을 석권하고 신인 작가에게 주어지는 어스타운딩 상까지 수상했고, [천둥의 궤적]으로는 로커스 상을 수상했다.

 

카이와의 로맨스나 매기가 가진 능력에 대해 생각보다 아쉬운 작품이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가 결합된 이 작품을 나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취향저격. 매기의 능력은 초능력이라고 하기보다는 내면에 잠재된 본능과도 연결된 것이어서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와 결합되어 그 신비감이 더했고, 카이와 쌓아가는 애정전선에는 심지어 나까지 두근두근했다. 네이즈가니가 매기를 악이자 질병으로 규정한 것에 비해, 카이는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받아들이며 순수하게 그녀의 능력에 감탄한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설정이 아니라, 누군가 나의 존재를 가감없이 받아들여준다는 것, 바로 거기에 인간이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다시 한 번 기운을 내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 있다는 메시지가 참 좋았다. 그 메시지가 매기의 능력과 어우러져 그녀가 한층 성장해가는 면모를 더 돋보이게 한다.

 

신과 괴물, 영웅의 이야기라 해서 전혀 고루하지 않고 감각적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과 장면의 화려함들은 조만간 이 작품도 영화로 제작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 역할을 누가 맡을까 궁금한 캐릭터들이 참 많다. 주인공 매기와 카이는 물론(이 엄청난 꽃미남을 대체 누가 연기할 것인가!), 동지인 듯 적인 듯한 마야, 그리고 신이자 신의 아들인 네이즈가니까지, 생각만으로도 기대된다. 속편을 예고하면서 여운 있게 마무리한 결말. 어서 빨리 다음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 출판사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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